열린 결말, 사람 따라걷던 고양이 이야기
[노트펫] 선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징벌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악인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하게 끝을 맺는 해피 엔딩은 지난 수십 년간 드라마를 지배한 공식과도 같았다.
필자가 어린 시절 보았던 ‘라떼 드라마’나 ‘라떼 영화’에는 예외 없이 그런 구도가 작동했다. 비록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 존재하는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나 영화는 그런 고전적 구도에 속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결론은 극의 소비자인 시청자나 관객의 몫으로 온전히 미루기도 한다.
이런 열린 결말 구도에서는 관객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마음에 맞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극을 본 후의 여운이나 잔상은 아무래도 이런 열린 결말이 더 많이 남게 된다.
지난 주말, 완연한 봄의 기운이 대지를 지배했다. 이런 날씨는 놓칠 수 없다. 운동화를 신고 동네 공원 산책을 했다. 그리고 귀가하는 길에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필자가 본 장면은 약 10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결론을 알 수가 없어서 지금도 뒤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기만 하다. 마치 결론 없이 끝난 드라마와 같다.
필자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마을버스 종점이 있다. 그리고 종점 앞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며칠 전 벌어진 사건의 공간적 배경은 종점 근처다.
흰 바탕에 검은 무늬를 띤 고양이 한 마리가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뒤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고양이를 저렇게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묘가(愛猫家)라면 꿈에서나 그릴 수 있다는 ‘산책냥’이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필자의 잘못된 상황 인식이었다. 한 발 앞서 걷던 사람은 고개를 갑자기 뒤로 돌리며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제발 그만 따라와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의 그런 말에 전혀 기죽지 않았다.
사람이 말을 마치고 움직이자 고양이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필자의 시야에서 사람과 고양이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는 그 뒤 이야기를 모른다. 마치 드라마의 열린 결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길고양이가 그날 한 행동은 그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사람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동물은 거의 없다. 오직 고양이만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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