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랑이 고양이를 키우지 않은 이유
[노트펫] 판빙빙(范冰冰)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여자 배우다. 그녀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1998년 드라마 「황제의 딸」이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판빙빙은 금쇄 역할을 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유명 배우면 누구나 그렇듯 그녀에게도 연기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이 있다. 2014년 드라마인 「무미랑전기」가 그렇다.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일대기를 다룬 해당 드라마에서 판빙빙은 주인공 무미랑 역할을 맡아 열연한다.
그런데 드라마 제목인 ‘무미랑(武媚娘)’은 측전무후의 본명이 아니다. 그녀의 부친이면서 당나라 개국공신이기도 한 무사확(武士彠)이 딸에게 지어준 이름은 무조(武照)였다. 무미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태종 이세민(李世民)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후궁이 되기 위해 궁에 입궁한 무조를 보고 무미랑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미(媚)는 ‘예쁘다’, 랑(娘)은 ‘여인’이라는 뜻으로 무미랑은 ‘무씨 성을 가진 예쁜 여인’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태종 사후 궁을 떠나 사찰에서 수행하던 무미랑은 우여곡절 끝에 태종의 아들이며 차기 황제인 고종 이치(李治)의 후궁이 되어 다시 입궁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과정은 황제 이치 뿐 만 아니라 다른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던 이는 소숙비(蕭淑妃)라는 후궁이었다. 황후 왕씨는 무미랑을 이용하여 소숙비를 견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궁에 돌아온 무미랑은 다른 사람의 꼭두각시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스스로 장기판의 ‘졸(卒)’의 역할을 거부하고 게임의 운명을 바꾸는 플레이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미랑은 각고의 노력 끝에 소숙비와 황후를 차례대로 제거하고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무미랑은 자신의 정적이었던 소숙비와 황후를 출궁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잠재적인 위험을 없애기 위해 이들을 매질하고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런 과정 중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소숙비는 죽기 전에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무미랑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악담 중에 대표적인 것이 ‘소숙비 고양이 환생설’이다. 대략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내(소숙비) 비록 운명이 다해 여기서 죽지만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고양이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쥐로 태어난 너(무미랑)를 물어뜯어 죽일 것이다.”는 것이다.
개인의 종교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환생을 믿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이런 무시무시한 저주를 듣게 된다면 제 아무리 강골인 무미랑의 마음에도 양심의 가책과 함께 두려움이 생겼을 것이다. 소숙비 죽음 이후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던 무미랑은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우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미랑은 서기 624년 2월 무사확의 차녀로 태어났다. 624년은 쥐(子)의 해가 아닌 원숭이의 해다. 12간지로 치면 신(申)에 해당된다. 이듬해인 625년은 닭의 해 유(酉), 626년은 개의 해 술(戌), 627년은 돼지의 해인 해(亥)다. 그리고 628년이 되면 12간지가 다시 시작되어 쥐의 해인 자가 되게 된다.
따라서 소숙비가 고양이로 환생하여 쥐로 환생한 무미랑을 물어뜯는다는 얘기는 다소 뜬금없고 황당한 느낌을 준다. 물론 ‘소숙비의 저주’나 ‘고양이 환생설’이 존재했는지도 불확실하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정도로 넘기는 게 좋을 것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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