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속담에 대한 유감

 

[노트펫] 대부분의 경우 사회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조직 구성원의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의사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외 없는 규칙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도 일어난다.

 

만약 조직의 책임자가 능력이나 도덕성에서 믿지 못할 사람한테 중책을 맡기는 결정을 내렸을 때, 으레 이런 말이 따라 온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겼다.”

 

속담에서 비유의 대상이 된 고양이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완전히 시꺼먼 불한당(不汗黨)을 의미한다. 불한당을 한 글자씩 풀이하면 ‘아니 불(不)’에 ‘땀 한(汗)’ ‘무리 당(黨)’이다.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 일 없이 빈둥거리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집단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불한당도 의미가 같다. “떼를 지어 다니면서 강도짓을 하는 무리”, 한자의 의미와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 위의 속담 때문에 고양이는 오랜 기간 동안 능력은 없지만 탐욕이 가득한 불한당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것도 주로 공공의 재산을 탐내는 탐관오리(貪官汚吏)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가?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영어 속담도 있다. “Don't set a wolf to watch the sheep.” 직역하면 “양을 지키기 위해 늑대를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불한당 고양이의 역할을 늑대가 하고, 생선의 역할을 양이 하는 셈이다. 참고로 고양이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속담이다.

 

생선은 사진처럼 반(半) 건조시켜 먹으면 좋다. 2011년 인천의 한 시장에서

 

 

그런데 고양이의 이미지를 갉아 먹는 또 다른 속담도 존재한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 부뚜막은 과거 한옥에서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을 의미한다. 그런 부뚜막의 특성상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나 완성된 음식이 그것에 놓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 속담이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이해 부족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다. 고양이는 그 어느 동물보다도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옛날 우리 선조들의 주택 구조에서 특히 좋아한 곳은 아궁이가 연중 가동된 주방이었다. 그것도 편히 쉴 수 있는 부뚜막을 좋아했다.

 

필자가 어릴 적 키웠던 나비도 외출 시간이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냈다. 요즘 말로 나비의 최애(最愛) 장소는 주방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뚜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비가 부뚜막에 있는 음식을 탐내지는 않았다. 나비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결코 탐내지 않는 그런 격조 높은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부뚜막에 올라갔을 뿐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남의 것을 욕심내는 식탐 가득한 동물이 되고 만 것이다.

 

고양이가 좋아하던 부뚜막의 따뜻함은 장작에서 나온다. 2014년 공주한옥마을

 

 

고양이의 본능에 대한 인간의 오해는 이렇게 엉뚱한 속담을 만들었다. 그 결과 고양이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위선자(僞善者)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위선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속은 시꺼먼 사람”으로 나온다.

 

애꿎은 고양이는 얌전한 척 하면서 자신의 실리는 확실히 챙긴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동물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 입장에서 이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한 일인가! 통탄할 일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영어 속담도 있다. “A fair face may hide a foul heart.” 직역하면 “아름다운 용모가 좋지 않은 마음을 숨길 수 있다.”는 위선자 고양이의 역할을 아름다운 외모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속담 역시 고양이가 억울한 누명을 쓰지는 않고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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