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물이 나비가 완벽한 자유를 누린 이유

[나비와빠루] 제 5부  

 

[노트펫] 꼬물이 나비는 정확하게 할아버지의 방에서 2주 동안 살았다. 마치 어린 손자 같이 정성을 다해 나비를 돌보던 할아버지는 “이 정도 했으면 됐다.”고 선언했다.

 

할아버지가 정한 정규 교육 기간을 이수한 나비는 마침내 새로운 거처로 옮기게 되었다. 어머니의 영역인 주방이 두 번째 잠자리가 되었다. 이는 나비의 관리 주체가 할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970년대 주방은 지금 주방과는 그 기능이나 공간의 위치가 사뭇 달랐다. 당시 주방은 음식을 만드는 기능은 물론 난방을 하는 역할도 했다. 각 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주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난방 후 남는 열에너지로 조리를 하는 것이다.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다. 또한 70년대 단독주택의 주방은 비록 건물 본채와는 붙어있지만 출입문도 따로 있는 사실상의 별채나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주방. 2021년 7월 수도국산박물관에서 촬영 

 

새로운 거처로 이사한 나비는 새로운 관리 주체인 어머니가 정한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게 되었다. 저녁식사 이전까지는 마당에서 놀다가 식사를 마치면 주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잠을 자는 것이다.

 

물론 아침이 되면 마당에 나가서 다시 자신만의 자유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비는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나비가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은 것은 성가신 쥐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나비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나비가 쥐를 직접 잡지 않아도 된다. 마당에서 잠만 자도 우리 집에서 쥐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할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놀고먹지 않았다. 비록 하루의 대부분을 잠자는데 소비했지만, 깨있는 시간 동안은 틈틈이 쥐를 잡았다. 나비가 집에 온지 두 달 정도가 흐르면서 그 많던 쥐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쥐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소년의 눈에는 만물박사 같이 보이던 할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여쭤봤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보낸 산골은 호랑이가 종종 출몰하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종종 호랑이 얘기를 해주시기도 했다. 그런 할아버지는 나비를 호랑이에 비유하며 설명해주셨다.

 

고양잇과동물은 사진 속 아무르호랑이처럼 많은 시간을 잠자는데 사용한다. 아이의 손바닥을 보면 호랑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7월 미네소타동물원에서 촬영

 

“우리 집에서 설치던 쥐들이 갑자기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쥐들이 멀리 도망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새로운 집으로 삼았을 것 같다. 쥐가 그렇게 움직인 것은 나비라는 존재 때문이다."

 

"나비는 우리 눈에는 귀엽고 예쁜 동물이지만, 쥐들에게는 무서운 호랑이와 같다. 그들에게 나비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혼을 옮기는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다. 그래서 쥐들은 나비의 활동 영역이 아닌 옆집이나 근처의 다른 집으로 이동했을 것 같다. 그 집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정확히 적중했다. 얼마 후 필자의 옆집은 갑자기 늘어난 쥐 때문에 홍역을 겪게 되었다. 참다못한 옆집은 자신의 친척집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키우게 되었다. 나비의 사례를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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