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부부가 높은 곳에 둥지를 튼 이유

[나비와빠루] 제 20부 

 

[노트펫] 1970년대 국내 주택 대부분은 단독주택이었다. 당시 아파트는 보편적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단독주택의 경우, 마당에서 본채로 진입하기 전에 외등(外燈)이라는 조명 시설이 있다. 그런데 제비 같은 작은 새들이 그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집에는 봄만 되면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매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귀한 손님(진객, 珍客)은 제비 부부였다. 부부는 잊지도 않고 귀신 같이 외등을 찾아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 봄만 되면 가족들은 으레 그 제비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봄의 전령 제비 부부가 지은 둥지를 보면서 왜 저리 높은 곳에 힘들게 둥지를 트는지 궁금했다. 지금 생각하면 천적을 피해 그러는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당시는 그 정도 추리가 되지 않았다. 제비 같은 작은 새를 누가 공격한다고 저렇게 힘든 일을 하는 지 의아했다.

 

새끼 제비들이 둥지에서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2018년 7월 촬영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답은 고양이 나비가 아닌 강아지 빠루가 몸소 가르쳐주었다. 나비는 세상만사에 모두 통달한 동물 같이 행동했다. 별다른 호기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무덤덤한 나비를 유혹한 존재도 있었다.

 

한동안 쓰지 않는 절구통에서 부레옥잠을 띄우고 물을 받아 키웠던 금붕어였다. 나비는 금붕어를 자신의 앞발로 꺼내려다 몇 번 들킨 적이 있었다. 결국 창고에 있던 모기장을 잘라서 절구통 위에 붙이면서 나비의 유혹은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빠루는 금붕어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빠루는 나비처럼 날래지 않아서 절구통 위로 도약할 수 없었다. 금붕어는 나비에게 그림 속의 떡(화중지병, 畵中之餠)이었지만, 빠루에게는 애당초 논의할 필요도 없는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빠루에게는 호시탐탐 노릴 수 있는 동물이 있었다. 필자가 학교 앞 잡상인에서 비상금을 털어서 샀던 병아리 다섯 마리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날은 병아리를 산지 정확히 보름이 된 날이었다. 노란 병아리들은 당시 제법 자라서 닭의 형상이 조금 보였다.

 

필자가 살던 집에도 제비가 외등 위에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웠다. 2018년 4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에서 촬영

 

만물박사인 할아버지는 손재주도 좋았다. 할아버지는 창고의 모기장과 골목에 버려진 막대기와 널빤지를 모아서 간단하게 간이 닭장을 마당에 만들었다. 그 닭장에서 병아리들에게 모이를 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비록 닭똥 냄새는 나긴 했지만, 귀여운 맛에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사건 당일도 방과 직후 닭장에 들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모기장 일부가 훼손되었고, 병아리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인은 마당에서 놀던 빠루였다.

 

할아버지는 낙담한 손자에게 “빠루를 원망하지 말고 닭장을 허술하게 만든 할아버지를 원망하라.”고 말씀했다. 할아버지는 마치 살아있는 부처님(생불, 生佛)과 같은 인자한 마음씨를 가졌다.

 

바로 그 사건 때문에 왜 제비 부부가 초등학생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빠루 같은 말썽꾸러기에게 여지없이 당했을 것이다. 빠루는 본의는 아니지만 어린 주인에게 야생 조류의 종족 본능 지혜를 알려준 셈이 됐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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