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식 허세, 맹견조심

[나비와빠루] 제 21부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개조심' 팻말이 걸린 집에 사는 귀여운 강아지 '그레이시(Gracie)'.
 

[노트펫]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어귀에는 다른 집들보다 훨씬 큰 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은 필자와 등하교를 같이 하던 같은 친구의 집이었다. 그 집은 큰 덩치 외에도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대문에 큰 글씨로 ‘맹견조심’이라는 경고판을 떡하니 붙여 놓은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1970년대에는 그런 문구를 붙인 집이 많았다. 문제는 그런 집 치고 덩치 큰 맹견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스피츠견 빠루 정도의 체구를 가진 중형견일 뿐이었다. ‘맹견조심’은 좀도둑 방지를 위한 1970년대식 허세(虛勢)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다.

 

‘맹견조심’ 같은 경고문은 70년대 한국에서만 유행했던 게 아니다. 미국 단독주택에는 개조심(Beware of the dog)이라는 경고문이 붙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중에는 핏불 테리어(Pitbull terrier)와 같은 맹견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소형견을 키우거나 아예 개를 키우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의 지인도 치와와를 키우며 그런 간판을 출입문에 걸어 두었었다. 2018년 6월 미주리주 컬럼비아의 ‘dollar tree’에서 촬영

탐스러운 무화과나무도 그 집의 명물이었다. 무화과는 지금은 마트나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과일이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사과나 배처럼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과일 축에 무화과는 속하지 않았다. 무화과는 초가을이 되면 찾아오는 귀한 손님(진객, 珍客)이었다.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는 무화과를 같이 먹자며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무화과를 먹어 본 경험이 없던 필자는 전날 밤 잠이 쉽게 오지 않을 정도로 흥분했다.

 

그런데 친구의 집에 들어간 순간 무화과가 아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큰 개에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었다. 대문에 붙은 그것도 진한 붉은 글씨로 크게 쓴 맹견조심은 허세가 아니었다. 마당에는 도사견(土佐犬) 한 마리가 당당히 어린 손님을 노려보고 있었다. 친구가 온다는 얘기를 어머니에게 미리 해두어서 개는 목줄을 한 상태였다. 

 

개는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더 컸다. 외부인의 출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엄청난 성량(聲量)으로 두 번 짖었다. 쩌렁쩌렁하게 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결국 어머니가 마당에 나와 짖는 것을 제지시키자 개는 손님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 집 개는 좀처럼 짖지 않는다고 했다. 접시에 담긴 무화과 하나를 건네주면서 친구는 “원래 겁이 많은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면서 자기 집 개에 대한 자랑을 했다. 약간 으스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즙이 가득한 무화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빠루는 심심하면 짖어댔는데, 그 울음에는 주인에게 밖의 무서운 일을 대신 처리해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무화과와 빵을 실컷 먹고 귀가하려는데, 친구 어머니가 누런 종이봉투에 무화과를 한가득 담아주셨다. 우리 가족들에게 맛을 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아까부터 혼자 무화과를 먹는 것이 양심에 찔렸다. 너무 기쁜 마음에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지인이 키우는 스피츠견. 빠루는 사진 속의 개보다 약간 컸다. 2019년 촬영

 

귀가하니 빠루가 달려들었다. 집에 올 때마다 열렬한 환영식을 벌이는 빠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우리 집의 대문에 붉은 페인트로 ‘맹견조심’이라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았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을 벌였다가 자칫 동네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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