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키우듯 강아지를 키웠던 할아버지

[나비와빠루] 제 29부

 

[노트펫] 동아시아 농경사회에서 소는 그 어떤 존재보다 중요했다. 돼지나 닭 같은 가축들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소는 달랐다.

 

농부에게 소는 선택 대상이 애당초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소는 경제학원론에서 나오는 사치재(奢侈財)가 아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재(必須財)였다.

 

농토가 딱딱하면 종자(seed)는 뿌리를 깊이 내리기 어렵다.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농부는 토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거친 황무지를 부드러운 땅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소의 엄청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토지를 농부가 원하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소가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쟁기(plow)로 논이나 밭을 갈면 거친 땅도 옥토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소는 소달구지라고 불리는 운송기구 역할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소는 농기구인 트랙터와 마을버스를 합친 존재였다. 그러니 소가 우리 조상들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었던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천 년 전 후한의 조조(曹操)가 황건적(黃巾賊)을 토벌하고 십여만에 달하던 투항자들을 다시 농민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소를 배분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소는 도적질을 일삼던 무리를 흙을 만지며 사는 농부로 변신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동물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농부였다. 1920~30년대 농부는 이 땅에서 가장 많은 종사자를 가진 직업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연히 농사를 위해 소를 키우셨고, 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다른 농부들처럼 할아버지도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소여물을 만드는 일을 했다. 외양간의 소들은 주인이 일어나서 움직이면 배고프다고 연신 울면서 아침밥을 보챘다.

 

할아버지가 나고 자랐던 동네에서 만난 한우. 할아버지도 이런 한우를 키우면서 농사를 지으셨을 것이다. 2015년 충남에서 촬영
 

할아버지는 소가 식사를 할 때도 가만있지 않았다. 소의 털을 빗질하며 피부 상태를 점검했다. 소들은 할아버지가 몸에 붙은 이물질을 털어내고, 벌레가 붙어있으면 떼어주면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빗질을 하며 어젯밤에 잘 잘 잤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오늘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농사일을 하지 않고 아들, 손자와 함께 도시에 살면서도 할아버지의 이러한 생활습관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며느리가 만든 밥을 빠루에게 주었고, 빠루가 그릇을 비우면 빗질을 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식전(食前)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이 밥을 먹기 전에 동물의 밥을 먼저 챙긴다는 할아버지의 오랜 습관이었다.

 

이중모 구조인 스피츠는 평소에도 털이 많이 빠지지만, 환모기(換毛期)인 봄이나 가을이 되면 마치 비가 내리듯이 많은 털이 빠진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러한 부지런함 덕분에 집에 개털이 날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루는 할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빠루를 빗질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할 때 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빠루도 우리 집에서 소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빠루는 우리 가족의 안전과 재산을 위해 밤낮으로 집을 지키니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사랑이 빠루에게 온전히 전해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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