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나비와빠루] 제 30부

 

[노트펫]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아프리카 초원의 치타(cheetah)가 임팔라(impala)를 잡기 위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하늘에서 급강하 하는 매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비단 자연에만 해당되는 경구(警句)는 아니다. 자기가 속한 작은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고 우쭐대도 넓은 세상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우물 안의 개구리 일뿐이다.

 

까치(magpie)는 그 무공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강호(江湖)의 무공 고수다. 이 새의 이미지는 턱시도를 입은 신사다. 멋쟁이 남자, 댄디(dandy) 그 자체다. 까치는 같은 영역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에게 ‘닭둘기’라는 멸시를 받는 비둘기와는 격이 다른 조류다.

 

하지만 까치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같은 맹금(bird of prey, 猛禽)과도 사생결단을 할 정도로 용맹하다. 몇 년 전 고층아파트에 살 당시 베란다 창을 통해 황조롱이(kestrel) 한 마리와 싸우는 까치 두 마리를 본 적이 있었다. 까치들은 맹금을 맞아서도 물러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5분여 뒤 새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야에서 각각 사라지고 말았다.

 

10여 년 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볕 좋은 봄날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까치 두 마리가 마치 머리를 공격하려는 봉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주변 나무 위에 둥지가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전 필자를 공격하려던 까치들이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둥지 주변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려는 모성애가 느껴졌다. 예민한 까치 부모를 위해 서둘러 그 곳을 떠났다.

 

까치는 나무에 붙은 벌레들을 즐긴다. 그런데 그런 손쉬운 먹잇감 외에도 난이도가 높은 작은 새를 잡기도 하고, 날랜 설치류도 사냥한다. 그렇다고 까치가 매번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공짜 먹이라고 할 수 있는 사체 처리도 마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칼 같은 대자연의 청소부(scavenger) 역할도 한다. 십여 년 전 출근을 위해 직장의 잔디밭을 통과하다가 땅에 떨어진 비둘기 사체를 먹는 까치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주변 새들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집고양이. 2019년 부산에서 촬영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구석에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곳이 있다. 그래서 그곳에는 고양이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고양이 아지트다.

 

얼마 전 일이다. 사람들이 챙겨준 밥을 먹으로 가던 고양이 한 마리는 여러 마리의 까치 무리에게 공격을 당하고 물러났다. 물론 일대일 싸움에서 고양이가 까치를 감당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상대는 까치 무리였다. 그러니 고양이가 불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까치들에게 당한 고양이는 필자의 고양이였던 나비와 같은 치즈 태비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그 고양이를 만나면 “나비야”라고 부르곤 한다. 한동안 인간의 관심을 외면하던 그 고양이는 얼마 전부터 멀리서 “야옹”하면서 겨우 호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관심을 보이자 정자 밑으로 몸을 숨긴 길고양이. 2019년 인천에서 촬영

 

해당 사건을 관찰자적 시점에서 보며 인간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제 아무리 민첩한 고양이라도 까치 무리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영리한 뛰는 놈이라도 한 마리면 성질 사나운 나는 놈 여러 마리를 당하긴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매번 간섭할 자신이 없는 한 그냥 자연의 법칙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나아보였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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