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창고에서 태어난 고양이 나비

[나비와빠루] 제 34부 

 

 

[노트펫] 필자의 주말 일정은 부모님 댁을 방문하고,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화는 건강 문제로 시작한다. 두 분의 연세가 여든을 넘기다보니 이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건강 체크를 마치면 가전제품의 정상 작동도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확인된 문제들은 주중에 해결한다.

 

부모님과의 공식 대화가 끝나면 좀 말랑말랑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얼마 전 주말에는 옛날에 키웠던 동물들에 대한 얘기를 했다. ‘동물의 왕국’ 애시청자답게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꺼리다. 어머니는 그날 고양이 나비의 어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집고양이의 일생을 살다간 나비와는 달리 나비의 어미는 길고양이 출신이었다. 길고양이의 삶은 풍찬노숙(風餐露宿) 그 자체다. 비바람을 맞으며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길고양이는 홀로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인한 길고양이라도 새끼를 낳고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날이 추우면 더하다.

 

어머니의 이야기의 시작은 아직 겨울의 기세가 남아있는 2월말이었다. 출산이 임박한 고양이 한 마리가 부산의 한 가정집 연탄창고를 찾았다. 당시 그 집 주인은 아궁이를 데우기 위해 연탄을 부엌으로 옮기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창고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지만, 헐거운 문은 꽉 닫히지 않고 약간 열려 있었다.

 

1970년대 연탄창고는 집집마다 있었다. 2021년 7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추운 날씨에 떨던 길고양이는 앞발로 그 틈새를 벌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창고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는 새끼들을 출산하기 시작했다. 아궁이를 데우고 방에서 몸을 녹이던 집주인은 잠시 마당에 나왔다가 창고의 문이 열려 있음을 알았다.

 

다시 문을 닫으려 창고에 갔다가 세상에 이제 막 태어난 새로운 생명들을 만나게 되었다. 주인은 어미 고양이 품을 파고드는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황급히 출산 용품들을 챙겼다. 처음 본 길고양이의 새끼지만, 사람의 마음에 있는 온정에 불을 지폈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분은 어머니의 오랜 지인(知人)이었다. 동네에서 인심 좋기로 유명했던 사람답게 작은 이불을 넣은 종이 상자를 이제 막 산고(産苦)를 겪은 어미 고양이에게 밀어 넣어 주었다. 그 분의 노력 덕에 삼남매는 무사히 자랐다.

 

두 달 뒤 새끼들은 필자의 집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에게 분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어미 고양이는 그 후에도 계속 그 집에 남아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집고양이의 삶을 살았다. 낯선 연탄창고를 파고든 길고양이의 선택은 자신은 물론 새끼들의 운명도 집고양이로 바뀌게 만들었다.

 

흔히 연탄창고를 지저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절을 지난 사람이라면 연탄창고가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안다. 1970년대 월동(越冬)을 위해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장독에 김장김치를 보관하고 창고에 연탄을 충분히 비축해야 했다.

 

1970년대는 동네마다 연탄집이 있었다. 당시는 골목이 좁아서 사진과 같이 지게에 연탄을 지고 주문한 가정에 배달했다. 2021년 7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연탄은 난방은 물론 취사에도 필수적이었다. 난방과 취사용 에너지, 모두 연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연탄이 없으면 냉골에서 잠을 자야 했고, 밥도 못 만들었다. 도시가스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면 된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연탄이 없던 시절에는 장작을 비축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탄창고에서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낳는 이야기는 당시 나비의 어미에게만 해당되는 애기는 아니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당시 그런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제는 연탄창고가 없으니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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