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고양이처럼 살고 싶다
[노트펫] 오전에 거실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제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수염을 뻗으며 갑자기 긴장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사냥 태세를 갖추곤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겨울이라 벌레도 없는데 제이를 자극한 게 뭔지 몰라서 주변을 둘러봤더니, 제이의 시선을 잡아 끈 건 다름 아닌 휴대폰에 반사된 빛 조각이었다. 내 손에서 휴대폰이 움직일 때마다 액정에 반사된 빛이 벽으로 천장으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잡겠다고 재빠르게 캣폴로 뛰어 올라가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는 제이를 보니 웃음이 픽 났다. 어젯밤에 사람처럼 내 팔을 베고 발라당 누워 잠들었던 아리도 어느새 나와서 합류했다.
고양이들 덕분에 특별할 것 없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웃을 일이 생긴다. 길어야 1년일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제이가 건강하게 한 해를 넘긴 덕분에 우리 집은 여전히 사람 두 명과 고양이 두 마리가 어울려 살고 있다.
30대가 되니 예전처럼 한 해가 넘어가는 것이 떠들썩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어릴 때는 특별한 이벤트가 즐거웠는데, 지금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낀다.
사람도, 고양이도 건강하길 바라는 것이 매년 가장 특별한 새해 소망이다. 더불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고 싶다. 너무 게으르게 지내도 무기력해지고, 너무 바쁘게 사는 것도 마음이 조급한 것 같아서다.
요즘 20대, 30대에서는 ‘워라밸’, 즉 일과 개인의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삶의 중요한 요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적당히 벌어 잘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도 고양이처럼 사는 법을 좀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침 2017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스페탄 가르니에의 였다. 항상 자유롭고 당당한 고양이의 태도를 본받으면 우리의 삶이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조언이 담겨 있다.
하기야, 고양이 집사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걱정이 없다기보다 있는 걱정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속 편한 고양이들을 지켜보면 ‘나도 고양이로 살고 싶다’는 생각, 한 번쯤 해보게 되지 않던가.
고양이를 보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도 같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도 같다. 매일 똑같은 집안에서 생활하는 게 지루할 것 같지만 고양이들은 매일 재미있는 걸 찾아낸다.
새로 사온 장식품이 있으면 냄새를 맡다가 앞발로 툭 쳐서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살짝 열려 있던 세탁실 안에 들어가 통돌이 세탁기 위로 뛰어 오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쫓아간 적도 있다.
또 원하는 게 생기면 헷갈리지 않게, 명료하게 표현하는 점도 사실은 대단하다. 고양이 말을 모르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니까.
남편은 가끔 나에게 ‘원하는 걸 돌려 말하지 말라’고 요청하는데, 그가 원하는 게 바로 고양이 같은 소통법일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 열린 고양이 박람회 ‘궁디팡팡 캣페스타’에 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면 너로 살고 싶다’는 컵받침 글귀를 보고 웃었다.
적당히 게으르게, 적당히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왜 우리에게는 어려울까? 게슴츠레 뜬 고양이의 눈을 마주보며 가만히 결심했다. 새해에는 고양이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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