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 오연아 "신발끈 꽉 묶고 있다"
[노트펫] 배우 오연아가 반려견 포미와 17년 만에 '제대로' 사진을 찍었다. 둘이 함께한 나날을 남기고 싶었다.
촬영 전에도 병원 신세를 져서 오연아를 마음 졸이게 했던 반려견 포미가, 카메라 앞에서 모처럼 '꽃단장'을 했다.
직접 손뜨개질 한 핑크색 스카프에, 핑크빛 리본으로 멋을 냈다.
오연아는 "포미가 이렇게 꾸민건 17년 인생 처음이다"라며 "우리 포미 동안이죠"라고 웃었다.
포미는 인터뷰 중에도 오연아의 곁을 맴돌고, 오연아의 시선은 내내 포미를 쫓다가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오연아의 반려견 포미는 17살 노령견이다. 옆에 있는게 너무나 당연했던 존재, 그러나 이제 조금씩 이별이 다가옴을 느끼고 있다.
오연아는 "워낙 노령견이라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 가겠지'라며 덤덤하게 보낼 준비는 하고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오랜 친구이자 동생 같은 포미에게 따뜻한 봄날을, 예쁜 벚꽃을 보여주고 싶다는 오연아. 그렇게 함께 맞을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연아는 작품으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배우다. 제대로 얼굴을 알린 tvN 드라마 '시그널' '굿와이프', SBS '대박' '푸른 바다의 전설' '피고인', OCN '보이스', JTBC '품위있는 그녀', 영화 '소수의견' '아수라' '보통사람' 등에 출연해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최근에는 tvN '화유기'에 출연해 선미(오연서 분)와 오공(이승기 분)의 얽힌 운명을 알려주는 백로 역을 맡아 활약했다.
긴 무명세월을 지나 빛을 발하고 있는 오연아는 "10년 동안 비축해둔 에너지가 많다. 신발끈 꽉 묶고 있다"고 웃었다.
◆"긴 무명세월, 연기 그만둘 생각도 했었죠"
오연아에게 연기의 길은 다소 늦게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고, 무대 미술이 전공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연극 무대에서 미술 설치를 했던 그는, 연기자들을 보며 "나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연기자라고 하면 톱스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연극 무대를 보니 연기자가 보이더라. 내 안의 내가 많다고 느꼈다.
그걸 표현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 스태프들이 모여있는 영화진흥위원회 사이트에 프로필 사진을 올리면서 연기자로 첫발을 뗐다.
배우 오연아가 작품 속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오늘'이 오기까지, 멀고 험한 길을 걸어왔다.
2009년 독립 장편영화 '계몽영화'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주목 받았지만,
긴 무명 생활을 버텨야 했다. 연기를 그만 두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중간중간 큰 위기는 없었어요.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 잡았어요. 포미의 병원비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생활이 안될 정도였어요. 통장 잔고는 비어있고. 그게 현실로 와닿았죠. '그만 내려놓아야겠다'고 혼자 다짐을 했던 찰나에 소속사를 만나게 된 거예요. 어차피 그만둘 생각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당당하게 '도장 찍을 거면 연락하라'고 했죠. 소속사 관계자도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가 '시그널' 하기 1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요."
긴 무명세월을 지나오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드는 동시에 힘든 나날을 버틸 수 있는 단단함이 생겼다.
"그 때는 월세를 내고 또 돌아서면 다음달 월세낼 날이 빨리 돌아오던지. 통장에 찾을 돈도 없고, 냉장고에 먹을 것도 없어서 집에 있는 은수저를 팔기도 했어요.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분들도 그렇게 많이 견뎠었어요.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나면 불안하면서도, '조금 기다리면 될거야' '오래 기다렸으니 금방 올거야'라고 생각해요."
오연아는 "현장에 가면 종이 한 장 차이로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불현듯 오기가 생기고 욕심이 생길 때도 있지만, 카메라 앞에 있는게 너무 떨릴 때도 있다. 그러면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말했다.
◆"신스틸러 수식어 죄책감, 아직 갈길 멀었죠"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긴 터널을 지난 오연아게 '빛' 같은 작품들이 날아들었다.
드라마 '시그널'과 영화 '소수의견'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그녀를 찾았다.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으로 존재감을 발했고,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연기 잘하는' 오연아를 만나게 됐다.
'시그널'에서는 순진무구한 간호사 얼굴 뒤에 숨은 잔인한 유괴범으로, '굿와이프'에서는 얄미운 변호사를, 영화 '소수의견'에서는 국민검사참여재판에 담당하는 검사로, '보통사람'에서는 1980년대 소신있는 신문사 사진기자를 연기했다. 짧은 분량에도 미친 존재감을 발하면서 '신스틸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시그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죠. 마지막에 우산 썼을 때의 각도가 아직도 선명해요. '굿와이프' 때는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잘했어'라는 신이 있어요. 재판에서 증인에게 '더러워'라는 문자를 읽어주는 신이요. 평소 애드리브를 못하는데, 저도 모르게 (캐릭터에) 빙의가 되서. 통쾌했어요. '보통사람' 때도 그리 큰 역할은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풍성해진 캐릭터였어요."
이제서야 오연아라는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연아는 "엄마가 주변분들이 알아봐준다고할 때 너무 뿌듯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나이가 있는 데 일을 못하고 있는 딸을 볼 때 마음이 얼마나 안 좋았을까 싶다.
아빠와 함께 시장을 갔는데 '시그널' 보셨냐. 내 딸이 간호사다'라고 했다. 창피하면서도 참 좋았다"고 말했다.
'신스틸러'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무거운 무게감을 느낀다고도 고백했다. 오연아는 "아직까지도 현장에 가면 긴장을 많이 해서 입이 마른다.
아직 갈길이 먼데 '신스틸러'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기사가 좋게 나오면 죄책감이 든다. 신명나게 놀고 난 뒤에 그런 소리를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연아는 다양한 작품 속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입어왔다. 섬뜩한 얼굴을 했다가 얄미운 연기를 펼치고 정의감 넘치는 얼굴도 보여줬다.
오연아에게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냐고 '뻔한' 질문을 하자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너무 기대해서 실망하는 것보다, 나에게 오면 설레어하고 준비를 하는 편이예요.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안 됐던 경험들이 있어요. 기대했다가 안되면, 연인이랑 헤어진 것처럼 상처가 크더라구요. 인생작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환경에 의해 잘 안 됐을 때 떠나보내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설레거나 희망하지 말고, 나에게 왔을 때 신나게 준비하자고. 그 때부터 욕심을 갖는게 좋은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었고, '내가 해도 되나' 싶은 캐릭터가 있었어요. '시그널' 때도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배우가 그 옷을 입어봐야 알 것 같아요.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내 캐릭터가 아닌 것을 한 번 입고나니, 연기를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변화에 도전하는 것에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변호사나 검사를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요. 한템포씩 천천히 갈 수 있는 역할을 만나면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연아는 지난 10년을 돌이키며 "쌓아놓은 에너지가 많다. 신발끈을 꽉 묶었다"고 앞으로의 나날들에 대한 기대감과 각오를 전했다.
앞으로의 10년, 더 나아가 배우 오연아가 그리고 있는 그림들에 대해 물었다.
"아직 저축을 해놓게 없어요. 쌓아놓은 내공이 없고 다소 미흡한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늘 대사를 달달 외워도 현장에 가면 틀릴 것 같은 불안함이 있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오는 것에 대해 당황을 할 때도 있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을 때 '빅픽처'를 그리고 싶어요."
오연아는 "'보통사람' 김상호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텃밭을 기르면서 사는 자신의 삶이 있고, 확고한 연기관도 있다. 저도 연기에는 올인을 하면서도 제 삶은 안고 가는, 연기와 삶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살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어서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이며. 긴 기다림 끝에 꽃망울을 틔운 오연아가, 또 어떠한 꽃을 피워낼지 궁금해졌다.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박은지 객원기자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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