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연아 "17년 함께한 포미와 빛나는 봄을.."
[노트펫] 반려견 포미를 품에 안고 걸어오는 배우 오연아는 언뜻 소녀처럼 수줍고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자 밝은 어조에 시트콤처럼 유쾌한 색채의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아직도 꺼내 보인 것보다 채 보여주지 않은 것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자꾸만 더 궁금해지는 그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맴도는 반려견 포미는 잘 어울리는 분홍색 머리핀을 하고 왔다.
그 둘이 함께한 시간이 벌써 17년째라고 한다.
◇ 포미야, 너도 나이가 들었구나
포미는 바로 얼마 전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사람으로 치면 80살이 넘은 고령으로, 늘 어딘가 아프기 마련인 노령견이기에 오연아 씨도 한편으로는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당연히 곁에 있을 것 같았던 반려견의 빈자리를 짐작할 때 허전하고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자꾸 밤중에 울고, 어딘가 부딪치고 그런 걸 보면서 그냥 치매가 왔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데려갔더니 뇌이염이 와서 뇌로 이어지는 신경이 막혔다는 거예요. 노령견이라고 제가 너무 무디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사실 병원에서 이번에 치료가 될지 장담을 못한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나이가 많아서 어쩌면 안락사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그 과정을 찾아보기도 했어이.
하지만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그 과정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과연 내가 그 순간을 옆에서 잘 지켜줄 수 있을까… 그래도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지금 이렇게 잘 다녀요."
아프기 전까지는 마치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 같은 느낌이었단다.
별 대화 없이,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서로의 곁에 머무는 당연한 관계 같았다.
하지만 포미가 정말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끼다 보니 함께 있는 매순간이 모두 소중하고 애틋하다.
"그 전에는 포미가 밤에 하울링을 하거나 구석에 혼자 있거나 해도 그냥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거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포미의 표현이었던 거예요. 제가 너무 몰라줬던 것 같아서 미안하죠.
그런데 이제는 포미도 '내가 표현하면 엄마가 아는구나' 하고 느끼는 것 같아요. 퇴원한 이후에는 통원 치료 받으면서 집에서 제가 매일 직접 주사도 놓고 약도 먹이면서 관리하고 있어요."
불과 3, 4년 전까지만 해도 '사냥개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잘 뛰던 포미가 점점 느리게 걷고 어딘가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시간의 속도가 느껴진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함께하고 싶은 바람이라고.
◇ 사랑에서 소외된 동물들에 대한 마음의 부채감
사실 노령견 포미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면서 왠지 모를 마음의 미안함과 부채감을 느낄 때도 있다.
포미처럼 사랑받을 자격은 충분한데도 사정상, 여건상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저는 지식도 많이 없고, 동물들을 위해서 무슨 엄청난 일을 해야겠다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냥 자꾸 마음이 쓰이는 때가 있거든요. 포미랑 병원에 갔다가 돈을 낼 때, 또 미용을 하거나 예쁜 옷을 사 입힐 때,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특히 최근에 포미가 아파서 병원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동물병원에 모인 각기 사연 있는 아이들을 마주치게 됐다.
치료를 포기하며 가족이 버리고 간 동물들도 많았다. 그중 주인이 도저히 못 키우겠다며 두고 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제가 포미를 안고 먹을 걸 주면 병원에 상주하는 개들이 저를 둘러싸고 우르르 몰려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얼마 후 통원 치료를 하러 갔는데 항상 있던 리트리버가 없어서 물어봤더니 엊그제 하늘나라로 갔대요. 아, 전에 봤을 때 간식이라도 하나 더 줄걸… 포미가 나은 게 기뻐서 정신이 팔린 바람에, 그 아이는 내일 왔을 때 주면 되지, 생각하면서 지나친 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요즘 그녀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하며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고 있다.
최근 지인들이 권해서 시작한 SNS를 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여러 동물들의 사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장거리나 해외로 입양을 갈 기회가 생긴 동물들이 제때 이동하지 못하여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동물을 장거리 이동시켜주는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단다.
"제가 적극적인 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동 봉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몇 번 지나쳤는데 포미가 퇴원하고 나니까 뭔가 불끈 용기가 생겼어요.
얼마 전에 배변 패드, 봉투, 간식, 물, 이동장 등을 챙겨서 기차도 예약하고 준비를 했었는데 그쪽에 사정이 생겨서 당일날 취소가 되었어요. 하지만 한 번 하고 나니까 두 번째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조금 시간을 투자하면 그 아이가 어딘가 입양 가서 포미처럼 잘 살 수 있는 거잖아요."
◇ 오래된 부부 같은 우리 사이
처음 일을 하러 서울에 올라왔을 때, 포미와 잠시 떨어져 지냈던 시기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독립하면서 포미를 케어할 수 없을 것 같아 부모님 댁에 두고 왔던 것이다. 그런데 포미가 그녀를 먼저 찾았다.
"그때 집에 한번 들려서 포미를 보고 나오면 발이 안 떨어지곤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엄마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포미가 우울증인 것 같다고. 제가 한 번 다녀가고 나서 5일 동안 통 밥을 안 먹었대요.
한 방에서 움직이지도 않고요. 그 방에 제가 놓고 온 캐리어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데리고 있어야겠다 싶어서 서울로 데리고 왔어요."
사실 배우로서 불규칙한 생활을 하며 혼자 살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은 게 더 많았다. 배우 특성상 일이 없을 때 어디 훌쩍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한 생명을 보호하고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도 가족과 살던 때와 조금 달랐다.
"일 안하고 있을 땐 포미가 아플까봐 늘 불안했어요. 내가 이 아이를 끝까지 잘 책임지지 못할까 봐요. 그리고 지진나면 어떻게 하지? 통장을 어떻게 챙길까 하는 생각보다 얘를 어디로 데리고 나가지 싶어 불안하기도 했고요(웃음).
여태껏 포미에 대해서 그냥 당연히 옆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포미가 아프고 빈자리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포미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 것 같아요."
한편으론 포미가 없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령견과 살아가고 있다면 누구든 그때를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포미가 아플 때마다 몇 번이고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이별의 순간에 대해 의연하게 대답한다.
"저는 괜찮아요. 포미도 제가 괜찮은 걸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포미가 없더라도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면서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요. 포미도 서운해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바랄 게 없다고.
아마 포미도 그 마음을 알고, 몇 번의 고비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이 맞이하게 될 올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화사할 것 같다.
"올 겨울이 너무 추웠잖아요. 부디 올해 봄은 함께 보낼 수 있었으면 싶죠. 봄이 와서 벚꽃이 필 때 우리가 한 번 더 신나게 산책하고 나면, 그때는 엄마가 너를 보내줄게… 그런 생각을 해요. 물론 사람 욕심은 끝이 없지만요(웃음)."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박은지 객원기자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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