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개나 고양이에게 약으로 쓰일 때

설정은 설정일 뿐. 술을 주시면 안됩니다. 

 

[노트펫] 이전의 글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보편적인 알콜, 그러니까 소주는 소독제로서의 효과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려서 40% 이하의 알콜은 소독 능력 차원에서 맹물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예외적으로, 알콜(에탄올)이 약으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좀 과장을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애주가들이 흔히 하는 말 그대로 ‘술이 약이 되는 경우’랄까요.

 

국내에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반려동물이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 EG)을 잘못 먹고 중독이 일어났을 때 에탄올을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에틸렌글리콜은 자동차 부동액으로 널리 사용되는 화합물인데요. 끈적끈적하고 단맛이 있는 무색의 액체입니다. 즉, 개나 고양이가 어쩌다 부동액의 단맛에 이끌려 섭취했을 때 에탄올을 치료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략적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에틸렌글리콜은 물질 자체의 독성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반려동물이 섭취해 소화기계로 흡수되면 간에서 대사작용을 거쳐 글리코알데히드(Glycoaldehyde), 글리콜산(Glycolic acid), 글리옥실산(Glyoxalate), 옥살산(Oxalic acid) 등이 생성되고, 이 대사산물들에 의해 조직과 혈관에 독성이 발현됩니다.

 

 

이때 간에서 에틸렌글리콜을 대사하는 효소가 바로 알콜 탈수소 효소 (Alcohol Dehydrogenase, ADH)인데요.

 

에틸렌글리콜이 ADH에 의해 대사되기 전에 에탄올을 혈관으로 주입하면 에탄올이 에틸렌글리콜과 ADH를 두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면 경쟁에서 밀려서 대사되지 않은 에틸렌글리콜들이 소변으로 배출되며 독성을 낮추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반려동물이 집이나 바깥에서 자동차 부동액을 먹었을 때, 응급처치로 술을 먹여도 된다는 뜻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 서술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반려동물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이후, 수의학적 판단에 따라 필요한 경우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정확한 용량의 에탄올을 주사제의 형태로 혈관에 주입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보호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반려동물의 입을 통해 술을 먹이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대단히 위험합니다. 반려동물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나 물건을 삼킨 경우, 지체없이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내원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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