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만 던져도 잡히는 붉은귀거북
[노트펫]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길을 건너다가 로드킬이 된 동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희생된 동물 중에는 의외로 민물 거북들이 많다.
물론 사슴이나 라쿤 같이 빠른 발을 가진 동물들도 차에 치여 비명횡사하는 마당에 느린 발의 대명사인 거북이 빠르게 달리는 차에 깔려 죽은 것은 이야기꺼리도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단 한 번도 그런 거북을 본 적이 없었던 필자에게는 거북이의 주검들은 충격적이었다.
지난 봄, 미국 지인에게 고속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거북을 몇 번 보았다고 했더니, 그는 도로에서 거북을 발견해도 절대 브레이크를 밟지 말라고 당부했다.
특히 빠른 속도로 달릴 경우, 자칫 앞 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뒤차와 충돌하여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거북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그냥 지나가라고 말하면서 미국에는 거북이 너무 많다는 점도 덧붙여 주었다.
얼마 후, 영어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와 함께 집 근처 작은 호수에 낚시를 갔다. 낚시에는 소질이 없어서 구경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호수는 자신의 고향인 북미보다 요즘 한국에서 더 유명한 블루길이 잘 잡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낚시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자기가 잡은 물고기를 대부분 풀어준다. 하지만 블루길의 경우, 포를 떠서 튀겨 먹기도 한다. 블루길은 미국 낚시꾼 사이에서 맛좋은 고기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날 내심 맛있는 생선 튀김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작은 기대도 가져보았다.
하지만 호수에서 잡히는 것은 물고기가 아닌 엉뚱한 동물이었다. 낚싯대를 무는 것은 다름 아닌 붉은귀거북이였다. 결국 “오늘은 틀렸다.”는 말이 나왔다.
낚싯대에 계속 걸려 올라오는 거북을 보면서 특이한 생각이 들었다. 수륙양용 탱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북은 난공불락 같은 장갑을 두르고 뭍과 물을 자유로이 이동하는 탱크나 장갑차 같을 것이다. 만약 이런 거북이들이 물에 가득 하다면 물고기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 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필자와 지인이 미국의 호수에서 낚아 올린 붉은귀거북은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이나 가야하는 한국의 호수나 연못에도 최근 지천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누군가 애완용으로 북미산 붉은귀거북을 키우다가 물가에 버렸을 수도 있고, 혹은 종교 행사용으로 방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렇게 자연으로 버려진 거북들의 후손일 수도 있다.
한국 하천이나 호수에서 붉은귀거북의 번식과 포식 활동을 막을 천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퇴치 작업을 펼치지 않는 이상 귀여운 외모를 한 이 무서운 포식자의 활동을 제어할 만한 동물은 없다는 뜻이다.
붉은귀거북은 멸종위기종인 한국 토종 민물 거북인 남생이와의 경쟁에서 이미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또한 북미 어류인 배스와 블루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수중 생태계에게도 심각한 위협동물로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붉은귀거북처럼 귀여운 외모 때문에 애완용으로 키웠던 동물이라도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무서운 포식자로 돌변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자기가 키우던 동물을 방생하면 후일 생태적으로 큰 대가를 치룰 수도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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