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파리 가기]⑩ 집냥이들, 난생 처음 호텔에 가다
[노트펫] 우리는 먼저 호텔에 전화해서 셔틀버스를 어디서 타나 물었다. 3번 게이트 앞. 그리고 시간은 거기 표시가 되어있단다.
그런데 가보니. ㅠㅠ 호텔 셔틀버스가 아니고 그냥 공항 주변을 도는 공공 셔틀버스였다. ㅠㅠㅠㅠ 이 짐을 다 어쩌라고.
정류장 앞에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공항리무진도 아닌 일반 버스에 이 짐을 어찌 다 가지고 타라고. ㅠㅠㅠ 게다가 버스 오기까지 8분이나 서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가 오자 사람들이 우르르 탄다. 우리는 짐이 너무 많아서 기사 아저씨께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사람좋게 웃으시며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일어나 직접 짐도 받아주고 끌어주시며 짐 하나당 100원씩이라고 농담도 하신다. 너무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친절하게 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했다. ㅠ
짐을 다 싣자 버스 가운데를 내 짐이 다 차지하고 있다. 공공버스에서 완전 민폐다.
하지만 친절한 기사님처럼 주변 사람들도 짐 많다고 아무도 구박을 안했다. 고양이 캐리어를 보고 다들 신기해하며 고양이 예쁘다고도 했다. 감사할 뿐이다.
몇 정거장 가자 호텔 앞이다. 짐을 다 내리고 보니 정류장에서 호텔까지 잠깐이나마 걸어야 했다. 짐더미를 생각하면 10 미터도 먼 거리다. ㅠ
우리는 겨우 짐을 끌고 호텔로 들어가서 체크인을 했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얼른 고양이들 화장실부터 설치해주고 캐리어를 열어주었다.
하루 종일 화장실도 못갔으니 얼른 나와서 볼일을 보면 좋겠는데, 쓰던 화장실을 그대로 가져가는 게 고양이들에게 더 안정적일 듯해서 이민 가방 하나는 온통 고양이 화장실로 채워서 가져왔는데, 하지만 고양이들은 캐리어에서 나오지 않는다.
낯선 곳. 당연히 고양이들은 무서운 거다. ㅠ 그러나 호기심 많은 둘째고양이가 고개를 쏙 내밀고 나오더니 방안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나는 밥과 물도 준비해서 놓아주었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담아온 짐정리를 시작했다. 한참 정리를 하다보니 첫째 고양이는 어느새 가방에서 나와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이나 가고 밥이라도 먹지. 안쓰러웠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안전한 공간으로의 대피가 우선일 것이었다.
둘째 고양이는 방안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하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는 첫째 고양이처럼 숨어버렸다. 이따가 밤이 되어 좀 조용해지면 나와서 볼일도 보고 밥도 먹으려나.
너무나 졸리고 피곤했지만 짐정리를 다 해야 내일 비행기를 탈 수 있기에 서둘러 마저 정리를 하는데, 큰 아이가 조용하다.
돌아보니 침대에 누워 손에 핸드폰을 쥔 채 잠들어 있다. 그래 너도 얼마나 피곤하겠니. 짐정리를 겨우 다 끝낸 9시쯤 나도 침대에 누웠다. 밤새운 다음날이라 정말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목욕을 해야 하니 5시 반에 일어났다. 충분히 더 잘 수도 있었지만ㅠㅠ 짐싸느라 머리는 떡져있고 몸도 지저분했다.
꼭 목욕을 해야만 비행기에서 쾌적할 여행을 할 수 있을듯 해서 안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일찍 일어났다. 고양이들은 밤새 잘 지냈나. 확인해보니 둘 다 침대 밑에 숨어있다.
보니까 밥도 아주 조금은 먹었고 화장실도 다녀온 흔적이 있다. 다행이다. 오늘 긴 여행을 해야 하는데.
샤워를 하고 아침도 먹고 짐도 마저 정리하는 바쁜 시간을 보낸 후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챙기려고 보니 둘다 침대 밑에 꼭꼭 숨어있다.
이 호텔은 침대 밑이 너무 넓어서 고양이를 꺼내는 게 큰일이었다.
그런데 보니까 고양이가 침대 가운데에 숨은 게 아니라 협탁 쪽에 숨어있다. 다행이다. 그쪽으로 가서 끄집어 내려는데 물고 반항이다.
얼마나 싫겠는가, 그나마 숨어있는데, 또 꺼내서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ㅠㅠ 고양이가 필사적으로 힘주면서 버티었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이 끌려나왔다.
우리는 고양이를 잡고 어제 미리 사다놓은 고양이용 기저귀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기저귀를 채우려니까, 아, 반항이 어마어마했다. ㅋㅋㅋ
넘나 싫은 듯하다. 나는 얼른 고양이 얼굴에 이불을 씌웠다. 그러자 반항이 좀 잦아들어 겨우겨우 채울 수 있었다.
애완동물용 기저귀는 웃겼다. 신생아 기저귀와 비슷한데 가운데 꼬리구멍이 나있다. ㅋㅋㅋ 열한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가는데, 기저귀라도 차야 하지 않겠니. 이해해주렴.
둘째 고양이는 첫째 고양이가 잡혀서 기저귀채움을 당하자 스스로 기어나와서 주변을 맴돌며 야옹거렸다. 얼른 잡아서 기저귀를 채웠지만 얘는 반항이 훨씬 덜했다.
기저귀가 뭔지 아는듯한 첫째 고양이는 자존심 상해하면서 성질을 내는 느낌이었는데 얘는 암 생각이 없는 듯. ㅋㅋ
첫째는 똑똑해서 귀엽고 둘째는 멍청해서 귀엽다. 우리는 서둘러 고양이를 캐리어에 넣고 방을 나섰다. 이미 많이 늦어있었다.
그 짐을 들고 공항까지 가는 길은, ㅠㅠ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택시는 아무도 우릴 태워주지 않았고, 셔틀버스 정류장은 어제 보다 멀었으며, 남들 출근시간에 민폐도 엄청 끼치면서, 죽을둥 살둥 겨우겨우 공항에 올 수 있었다.
ㅠㅠ 정말이지 넘나넘나 힘들다. 파리에, 무사히 갈 수가 있으려나. ㅠ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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