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파리 가기]⑪ 험난했던 고양이와 비행기 탑승하기
[노트펫] 공항 앞에서 셔틀버스를 내린 시각은 오전 7시40분. 오전 8시55분 비행기인데 이 일을 어쩌나. 그나마 다행인건 웹체크인을 미리 해놓은 것이었다.
그래도 서둘러 짐을 부치러 가서 줄을 서자 안내원이 웬 고지문을 준다. 뭐지 하고 보니, 오호! 20분 연착된다고 한다. 이게 웬 떡.
평소같으면 짜증났을 연착이 이렇게 기쁘게 들리다니.ㅋㅋㅋ 이런 큰 항공사는 연착이 잘 없는데 이게 웬일이야. 감사하게도.
내가 고양이들 데리고 낑낑대는 걸 알아준건가. ㅎㅎㅎ 늦은 덕에 줄 선 사람이 별로 없어 우리는 금방 카운터로 갔다.
그러나. 역시 고양이를 데리고 타는 것의 서류는 또 간단하지가 않았다. 뭘 다 입력하고 확인하고 게다가 돈도 결제해야 하고...
복잡한 업무 맡겨서 미안하다고 카운터 승무원에게 커피를 건냈더니 이런 거 안주셔도 된다고 안받으려고 한다. 옆에서 아들놈이 마실 시간이 없어서 주는 거라고 거들자, 받아든다.
그런데 직원은 동물 데리고 타는 업무를 넘 오랜 만에 해서 헤맨다고 미안해했고 잠시 뒤 추가 운임 결재 과정에서는 심지어 에러가 났다면서 자기가 F카운터에 가서 결제하고 올테니 기다리라 하고 날듯이 달려갔다. 여기가 C인데. F는 꽤 멀텐데...
그래도 20분 연착덕분에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리며 공항 짐가방 저울에 고양이들도 달아봤다. 캐리어까지 첫째 고양이는 7.1kg 둘째고양이는 6.7kg. 생각보다 무게가 덜 나갔다.
안을 들여다보니 고양이 기저귀는 이미 다 벗겨져 있었다. 요것들이 얌전히 차고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기저귀도 없이 11시간을 잘 참을까. 넘 놀라서 오줌싸거나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이미 벗어버렸고 다시 채운대도 벗어버릴테니 어쩔 수 없다.
한참을 기다리고 카운터 접수업무가 마감되고도 좀 있다가 직원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우리가 늦을까봐 전력을 다해 달려온 것이었다. 정말 고맙고 친절한 에어프랑스 직원이었다.
그리고 보딩이 좀 늦었다며 검색대 패스트 패스 카드까지 끊어주었다. 아프다고 하란다. 사실 진짜 아프긴 하다. 우린 메디컬 확인서도 있잖은가. ㅋㅋ
암튼 덕분에 우리는 검색대의 오른쪽 끝에 있는 패스트 트랙으로 처음 들어가 봤다. 줄도 안서서 하나도 안 기다리고 검색받고 들어가는 편안함. 와우.
있는 사람들은 다 이런 걸로 다니니까 줄도 안서고 그러는 거구나. 이런 새로운 세상이 있었네.
금세 검색대에 들어선 우리가 고양이 가방을 어찌해야 하나 물으니 가방에서 고양이를 꺼내서 안고 들어가야 한단다. 고양이가 넘 싫어할텐데... ㅠㅠㅠ
하지만 고양이는 생각보다 덜 반항하며 끌려나왔고 내품에 꼭 안겼다가 다시 서둘러 가방 안으로 되돌아들어갔다.
대견한 내 고양이. 이런 장거리 여행을 견뎌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고양이 검역관이 고양이에게 뭔가 자꾸 잡힌다면서 시간을 또 끌었다.
정말 고양이 데리고 출국하는 건 넘나 힘든 일이다. 검역관은 서너번 기계로 무언가를 체크하더니 문제없다고 들어가라고 했다.
아, 이 긴 프로세스가 드뎌 종료되었다. 시간은 벌써 오전 8시20분. 이제 비행기를 타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나가서 본 건 3번 게이트인데 보딩패스에 적힌 번호는 113번이었다. 아니 113번이라니??? 그럼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거야???
지나는 직원에서 물어보니 113번은 27번 앞까지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후 또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단다. 에구에구.
열차에 에스컬레이터라니, 트롤리를 버리고 이 무거운 짐가방과 고양이를 그냥 들고 가란 말이잖은가. 정말 멀고도 힘들다. 연착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나는 내 캐리어위에 고양이 캐리어를 올려놓고 끌었지만 어깨에 매는 가방을 가져가는 큰 아이는 고양이 캐리어도 어깨에 매고 가면서 짐을 들었다 내리다가 간혹 고양이 캐리어가 바닥에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캐리어 안의 둘째 고양이가 멀미나 안하려나 모르겠다. 많이 놀라고 무서울텐데. 정말 험난한 여행이다.
우리는 겨우겨우 먼 길을 가서 마침내 보딩을 했다. 큰 아이는 무거운 짐을 들고 헉헉거리며 비행기를 탄 후 투덜투덜하면서 캐빈에 짐을 올린다.
투덜거리더라도 다시 한번, 이 놈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런데 우리 둘만의 짐으로 캐빈 한 칸이 꽉 차서 넘친다.
옆자리 승객이 불안했는지 다른 캐빈에 넣으라고 하는데도 고지식한 그놈은 거기는 우리 캐빈이 아니라며 어떻게든 테트리스를 해서 우리의 어마어마한 짐들을 다 한 캐빈에 밀어넣는다. 하여간 똥고집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힘들텐데 옆자리 흑인 여자의 가방도 캐빈에 올려 실어주고 있다. 친절하셔라, 했더니 임산부여서 어쩔 수 없었단다. ㅋ
짐을 다 올렸으니 이번엔 고양이 캐리어를 제 자리에 넣어야했다. 어, 그런데 고양이 캐리어는 좌석 앞자리 아래쪽에 넣으라고 되어 있는데 에어프랑스는 앞자리 아래의 가운데가 의자다리로 막혀있어서 도통 캐리어를 넣을 수가 없다. 어쩌라는 거지???
비좁은 비행기에서 고양이 캐리어가 들어갈 곳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발 놓을 자리에 두어야 했다. 근데 이러면 내 발은 도대체 어디에 놓으란 말인가?
덩치 큰 아이는 어떻게 앉아서 비행을 하란 말인가? 마리당 운임을 14만원이나 추가로 받으면서 뭔가 대책이 하나도 없으니 좀 난감했다.
우리는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고양이 캐리어를 둘 데가 없는데 혹시 뒷자리 빈 좌석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친절한 승무원은 뒷자리 승객에게 양해를 구해준다.
그런데 처음에 뒷자리 승객은 우리가 고양이 캐리어를 뒤로 보낸다는 줄 알고 질색을 한다. 에이 설마 그럴리가. 어떻게 고양이만 뒤로 보내겠는가.
고양이는 내 옆에 두고 우리 아이가 뒤로 간다는 거지. 그건 괜찮단다. 그래서 아이가 뒤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좀 편해졌다.
나는 발 놓을 자리를 확보하고자 옆의 빈 자리에 고양이 캐리어를 올려도 되냐고 물었는데, 안된단다. 규정상 시트에 캐리어를 올릴 수 없단다.
OK, OK. 어쨌든 한 자리 더 얻은게 어딘가. 어떻게든 되겠지. 덕분에 큰 아이는 고양이에게 해방되어 편안해졌고 나 역시 발 놓을 곳은 없어도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은 찍 소리도 안내고,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고만 있다.
나는 캐리어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고양이들을 쓰다듬어 주면서 이제 비행기에 탔다고, 열한시간 뒤에 내릴거라고 좀만 더 버티자고 말해주었다.
[고양이와 파리가기]는 권승희 님이 작년 가을 고양이 두 마리를 포함한 가족과 파리로 이주하면서 겪은 일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옮겨 게재한 것입니다. 권승희 님의 블로그 '행복한 기억'(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ongun212)을 방문하면 더 많은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권승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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