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는 다람쥐에게!
숲의 소출은 야생동물들에게
[노트펫] 한국의 가을은 은행나무가 전령 역할을 하며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은행나무의 푸른 잎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샛노랗게 변하고, 독특한 악취를 풍기는 열매도 누렇게 익어가면서 사람들의 코를 자극한다.
미국에서 은행나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참나무다. 참나무는 은행나무만큼 잎의 색깔 변화는 없고 열매도 악취를 풍기지 않는다. 하지만 은행나무에 못지않게 많은 열매가 매달리면서 바람이 불면 열매가 땅에 우수수 떨어진다.
도토리를 밟으며 시내를 걷는 것은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 중부의 도심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흔한 풍경일 뿐이다.
도심이 이럴 정도면 도심 밖 숲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가을이 되면 중부의 숲은 도토리가 지천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토리를 밟지 않고 간단한 산책을 마무리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사람의 눈에는 별 볼일 없는 흔한 도토리지만 자연에서는 소중한 역할을 하는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도토리는 다람쥐를 포함한 들짐승은 물론 바구미 같은 작은 벌레와 하늘을 나는 작은 새들의 배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야생동물들이 이렇게 배불리 먹는 것은 참나무에 도토리가 많이 열리고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흔한 것만이 가질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미덕이다. 도토리는 다른 생명의 배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은 것으로 싹을 틔운다. 이렇게 싹튼 도토리는 참나무로 성장하여 다시 숲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온다.
도토리가 참나무로 성장하여 숲으로 가는 과정에는 식탐이 많으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는 다람쥐가 일조한다. 도토리는 성실한 다람쥐에게 은행에 저금하는 종자돈이나 마찬가지다. 다람쥐는 당장 먹을 것이 아니면 자신만의 보물창고들에 도토리를 몰래 숨겨두고 배고플 때 꺼내 먹는다.
하지만 다람쥐가 수십, 수백에 이르는 은신처를 전부 기억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도토리 중에서 일부는 후일 싹을 틔울 수밖에 없다. 이는 다람쥐가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람쥐는 참나무의 번식을 위해 매우 큰 역할을 예나 지금이나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다람쥐는 도토리를 떨어진 곳에서 먼 곳으로 옮겨서 숨겨 두기 때문에 다람쥐에 의해 싹이 튼 도토리는 어미 참나무와 생존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가지게 된다. 이 정도 공헌을 했으면 다람쥐는 대대손손 평생 무료로 도토리를 실컷 먹어도 될 것 같다.
도토리를 소비하는 다람쥐나 바구미 같은 동물들은 먹이 사슬의 정점이 아닌 중간이나 바닥에 위치한 동물들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 상당수는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따라서 이들 동물들을 먹는 포식자들은 먹잇감을 통해 도토리를 간접 섭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도토리는 먹이사슬의 바닥에서 정점까지 모든 동물들의 배를 채워준다고 볼 수 있다.
농부들은 마치 자식을 키우듯이 많은 공을 들여 봄부터 가을까지 곡식을 키운다. 그리고 수확의 계절이 되면 누렇게 영근 곡식들은 걷으면서 그간 고생의 대가를 받는다. 그래서 농부들은 자신이 정성을 다한 곡식들이 태풍이 불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자식 같이 키운 벼가 넘어졌다.’고 애석해한다.
자연도 농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이 직접 농부가 되어 키우는 경작지는 숲이다. 그리고 곡식은 숲속의 나무들이다. 자연은 농부보다는 비록 거칠지만 나무가 열매를 맺기에 충분한 햇볕을 내려주고, 비까지 뿌려준다.
또한 시원하게 지내라고 바람까지 불어준다. 따라서 숲에서 나는 소출은 사람의 몫이 아닌 자연의 것이다. 그리고 그 소출은 자연의 자식들인 야생동물들의 몫이기도 하다.
공짜를 탐해서는 안 된다. 결코 무상급식을 욕심내서는 안 된다. 자연이 만든 도토리는 자연이 애당초 의도한 것처럼 야생동물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래야지 그것을 먹고 야생동물들이 가을과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배려만이 생태계가 균형적으로 작동하게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행동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숲의 소출은 야생동물들에게. 만고불변의 진리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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