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곰 와브의 흔적을 찾아서

[노트펫] 어니스트 시턴(Ernest Thompson Seton)은 흔치 않은 작가다. 그가 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들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의 가장 큰 문제점인 지나친 의인화도 없다.

 

담담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주인공인 동물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그래서 그의 책을 펴면 끝을 봐야 한다.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늑대, 곰, 코요테, 까마귀가 되어 대자연을 신나게 달리게 된다.

 

시턴의 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늑대왕 로보(Lobo the King of Currumpaw)와 회색곰 와브(The Biography of a Grizzly)였다. 그래서 초등학생 시절, 와브(Wahb)의 땅에 가서 곰의 흔적을 찾겠다는 순진한 마음을 먹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꿈은 얼마 전 이루어졌다.

 

티톤국립공원의 회색곰 박제. 티톤은 옐로스톤 인접 국립공원이다. 2018년 6월

 

올 여름 옐로스톤(Yellowstone National Park)으로 가족 여행을 가기 전에 서재에서 긴 잠을 자던 '시턴 동물기'를 깨웠다. 여행 목적지와 와브가 살던 곳이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와브의 왕국은 와이오밍주(Wyoming) 미티츠(Meeteetse)의 숲인데, 아이다호주(Idaho)의 쇼쇼니(Shoshone)나 몬태나주(Montana)의 비터루트(Bitterroot)에서도 출몰했다.

 

그래서 와브가 살던 쇼쇼니에 예약한 호텔은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실내 곳곳에는 원주민들의 그린 그림들과 촬영한 사진들이 걸려있어 보기 좋았다. 호텔방에서 창문을 여니 저 멀리 있는 산에서 금방이라도 와브가 나올 것 같았다.

 

쇼쇼니의 호텔에 걸려있는 원주민들의 그림. 2018년 6월 촬영

 

와브는 여름이 되면 옐로스톤으로 갔는데, 이는 그가 공원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72년 정부는 옐로스톤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그 지역에서 사냥을 금지했다. 영리한 야생동물들은 이런 낌새를 이미 알아차리고 새로운 소도(蘇塗)로 몰려갔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관광객들은 동물에게 먹이 주는 재미로 공원을 찾기도 했다. 그래서 와브는 사람이 많은 여름에 안전하게 공원으로 가서 배를 채운 것이다.

 

그런데 옐로스톤과 티톤(Grand Teton National Park)을 가보니, 곰이 뒤지지 못하도록 고안된 쓰레기통들이 보였다. 이제는 곰이 쓰레기도 건드리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옐로스톤국립공원 내에 있는 유황온천. 2018년 6월 촬영


와브는 총상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총알이 몸에 박힌 것도 있다. 또한 와브는 비버덫, 늑대덫, 곰덫에 걸려봐서 발에도 깊은 상처들이 있다. 하지만 와브에게는 긴장을 풀어주고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개인 회복실이 있다. 와브는 유황온천에서 몸을 녹이면서 원기를 회복했다.

 

와브의 여름 별궁인 옐로스톤에 가면 노천 유황온천들이 있는데, 그 근처를 지나가면 마치 삶은 계란이 썩는 다소 역한 냄새들이 난다. 책의 내용과도 유사하다.

 

옐로스톤국립공원의 그루터기. 회색곰 와브도 어미를 잃고 어린 시절 이런 그루터기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2018년 6월 촬영

 

옐로스톤에서 내려오며 속이 텅 빈 그루터기를 보았다. 거대한 체구의 회색곰도 새끼 시절이 있다. 그래서 2년 정도 어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와브는 어릴 때 어미를 잃어서 그런 어미 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켜야만 했다. 새끼 와브는 흑곰, 늑대, 코요테 같은 포식자들이 다가오면 속이 빈 그루터기에 몸을 숨겨 위험을 피했다.

 

이렇게 여행 마지막까지 와브를 찾는 노력을 계속했다. 별 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 시절 꿈꾸었던 소망을 이룬 것 같다는 뿌듯함이 드는 여행이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시턴 동물기: 박물학자이자 화가였던 어니스트 시턴은 '동물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1898년 '내가 아는 야생동물'이라는 제목의 동물 관찰기를 발표한 뒤 30여 편에 달하는 동물이야기를 발표했다. 이 이야기들을 묶어서 '시턴 동물기'라고 부른다. '시턴 동물기'로 발표된 작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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