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징이 된 흰머리수리

[노트펫] 어릴 적 즐겨보던 서부영화(Western)의 등장인물들은 원주민들이 나오면 어김없이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미국에 살던 사람들을 인도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잘못된 표현이다.

 

그래서 최근 미국인들은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하지 않고,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s)이라고 부른다. 각급 교육과정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킨다.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은 자연을 착취나 파괴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야생동물들을 학대나 남획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또한 개별 동물 종류 별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특히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은 흰머리수리(Bald eagle)를 신성한 힘을 가진 영험한 새로 여기고 존중하였다. 그래서 그 새의 깃털로 머리나 옷을 장식하기도 했다. 새의 신성함이 그것을 장식한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네이티브 아메리칸 부족장의 얼굴을 그린 전투기. 흰머리수리 깃털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자를 쓰고 있다.
2018년 6월 Hill Aerospace Museum에서 촬영

 

그런데 미국인들이 만든 Bald eagle이라는 흰머리수리의 영어 이름은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잘못된 표현이다. 흰머리수리는 결코 대머리(bald)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머리도 아닌데 대머리 새라고 부르는 것은 억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Bald eagle이라는 영어 이름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름이다. 멀리서 이 새의 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대머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Bald eagle이라는 이름은 착시현상이 만든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흰머리수리. 2018년 미네소타동물원에서 촬영

 

그런데 Bald eagle과 같이 이름만 대머리가 아닌 진짜 대머리인 맹금류도 있다. 독수리(Vulture)다.

 

독수리는 이름에서 자신이 대머리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독수리의 독(禿)자는 대머리를 뜻하고, 수리는 맹금류를 뜻하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머리뿐만 아니라 목의 윗부분부터도 깃털이 없어서 머리와 목의 일부는 피부가 다 보이기도 한다.

 

북미 대륙 전역에서 서식하는 터키 벌처(Turkey Vulture)가 사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을 보면 독수리 특유의 대머리임을 알 수 있다. 2018년 3월 오마하에서 촬영

 

1782년 흰머리수리는 미국의 국조(國鳥)로 선정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미국 건국 초 미국을 대표하던 재주꾼이자 정치인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흰머리수리의 행실이 나쁘다면서 국조 선정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칠면조를 미국의 국조로 강력 추천하였다. 프랭클린의 반대 논조는 간단했다. 흰머리수리는 도둑 기질이 있어서 남이 사냥한 것을 뺏어 먹고, 심지어 죽은 사체까지도 처리하므로 미국의 새로 선정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자나 호랑이도 자기보다 약한 포식자의 먹이를 뺏어 먹고, 사체가 있으면 먹어 치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이러한 행동을 품행이 나쁘다고 비판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여론도 칠면조보다는 흰머리수리의 강력한 모습을 더 높게 평가하였고, 결국 흰머리수리가 미국의 새로 선정된다. 자칫하면 칠면조가 미국을 상징하는 국조가 될 뻔하였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이 글은 멤피스동물원과 미네소타동물원의 흰머리수리 관련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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