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발바닥 털
[노트펫] 미국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는 서부개척의 상징과도 같은 관문도시(The Gateway City)다. 19세기 당시 세인트루이스는 미시시피강을 이용한 하상 운송과 대륙 철도의 요충지로 상당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북미 대륙에서 하상 운송과 철도의 중요성이 약화되면서 세인트루이스는 예전의 위치나 영광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미주리주에서는 여전히 가장 큰 도시로 손꼽히면서 대도시권을 이루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의 대표적인 어트랙션(attraction)으로는 세인트루이스동물원(Saint Louis Zoo)이 있다. 미국의 동물원은 비싼 입장료를 받아서 자주 이용하기에 주저함이 든다. 하지만 이 동물원은 지역주민 등의 활발한 기부로 운영이 되고 있어서 다행히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세인트루이스동물원은 북극곰(Polar bear)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북극곰은 미국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부분의 동물원에는 북극곰이 없다.
동물원의 북극곰 사육장 바로 옆에는 그리즐리(Grizzly Bear) 사육장이 있다. 다른 동물원이나 사파리에서 그리즐리를 보면 압도적인 덩치에 놀라기 마련이지만,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다르다.
바로 옆에서 북극곰을 보고 와서인지 그리즐리를 보아도 감흥이 들지 않았다. 그리즐리 특유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북극곰에 가려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런 곰 같았다.
그런데 동물원에서 북극곰과 그리즐리를 바로 옆에 배치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나름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두 곰의 서식지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일부는 접해있다. 그래서 간혹 만나기도 한다. 그리즐리는 캐나다 전역과 미국 북부, 북극곰은 캐나다 북부와 알래스카에서 산다.
둘째, 북극곰과 그리즐리는 혈연관계가 멀지 않다. 북극곰은 그리즐리나 코디악불곰 같은 북미 불곰들과 혈연관계가 가깝다.
그래서 캐나다 북부에는 그리즐리와 북극곰 사이에 태어난 그롤라 베어(Grolar bear)나 피즐리 베어(Pizzly bear) 같은 혼혈곰들이 간혹 등장한다. 혼혈곰의 외모는 얼핏보면 북극곰에 가깝지만 자세히 보면 그리즐리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혼혈곰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북극곰은 혹한에 특화된 동물로 만약 북극곰 유전자에 불곰 것이 섞이면 북극곰의 생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북극곰의 발바닥을 예로 들 수 있다. 북극곰은 불곰들과는 달리 발바닥 사이에 털이 촘촘히 나있다.
북극곰의 발바닥 털은 매서운 추위를 견디게 하고, 미끄러운 얼음에서 넘어지지 않는 역할을 한다. 발바닥에 난 털은 별것 아니게 보이지만 이렇게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북극곰의 생존에 필요한 발바닥의 털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순수 북극곰의 혈통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 반려동물 뉴스 노트펫,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