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쥐잡는 숙제와 고양이의 활약

[노트펫]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의 집에는 공통된 고민이 있었다. 그 고민은 다름 아닌 쌀을 축내고, 집을 갉고, 밤이 되면 시끄럽게 돌아다니며, 질병까지 옮기는 쥐라는 성가신 동물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쥐 잡는 일을 국가 차원의 풀어야할 과제로 여기고, 대대적인 쥐 소탕 작업을 벌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그것을 살 외화도 귀하던 시절, 쥐를 잡는 것은 행동하는 애국이었다.

이 중차대한 과제에는 어린 초등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례시간이 되면 쥐꼬리를 다음날 가지고 오라는 숙제가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나왔다. 아이들에게 쥐는 징그럽고, 무서운 동물이다. 더구나 그렇게 쥐의 꼬리를 가위나 칼로 잘라 등굣길에 가져오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쥐를 잡아서 꼬리를 가지고 오라는 숙제는 아이들이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도 알고 계셨다. 그 숙제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몫이었다.

 

그 숙제는 수학 문제 100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하기 싫은 것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마른 오징어의 다리를 잘라서 아빠의 구두약을 발라 가져 오기도 했다. 하지만 속임수에 선생님이 잘 속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난이도 높은 쥐꼬리 숙제는 필자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은 숙제였다. 집에는 늘 쥐꼬리가 마치 전략비축물자처럼 비축되어 있었고, 장손(長孫)이라면 끔찍이 아끼셨던 할아버지는 언제든지 쥐꼬리를 잘라주셨기 때문이다.

 

집에 쥐꼬리가 마치 상비약처럼 있었던 이유는 나비라는 멋진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일부 겁 많은 고양이들은 쥐를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나비는 그런 연약한 고양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양이였다. 든든함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나비는 자기가 잡은 쥐를 결코 먹이로 삼지는 않았다. 나비는 다른 용도로 그 쥐를 사용했다. 약간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에게 매일 밥을 주는 주인에게 사용했다. 

 

옛날 단독주택들의 주방은 현대식 아파트와는 구조가 달랐다. 방이나 거실이 있는 본채와 주방은 서로 분리된 구조였다. 건물의 바로 옆에 있는 아궁이와 주방이 서로 붙어있다고 보면 된다.

 

나비는 불을 때는 아궁이 근처에 새벽에 자신이 잡아온 쥐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어머니는 아침 준비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셨다가 나비가 해놓은 행동 때문에 몇 번 기겁을 하였다. 하지만 나비가 매일 숙제처럼 잡아오는 쥐가 아들들에게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는 나비가 쥐 사냥에 성공하면 크게 격려하셨다.

 

나비는 그 모든 흐름을 제대로 이해했다. 자신의 행동이 대한민국 정부와 주인에게 유익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사냥은 애국행위이며 주인에게는 밥값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 추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만 하여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일기장에 나비는 애국자라고 써놓기도 했다.

당시 쥐꼬리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권력이었다. 특히 쥐를 잡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쥐꼬리는 소중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비 덕분에 어깨에 힘 꽤나 주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 어린 아이들에게 쥐꼬리 하나는 거의 과자 한 봉지가 같은 가치였다.

 

고맙다, 나비야!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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