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사람을 위한 언성 히어로

[노트펫] 인류역사 최초의 혁명이자,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혁명 중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은 신석기혁명이다.

 

농업혁명인 신석기혁명을 통해 인류는 수렵과 채집이라는 자연 의존적 경제에서 생산경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또한 인류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주하며 자식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의식주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해결되면서부터 인구도 증가하게 되었다.

 

농경은 인류로 하여금 가을이 되면 들판에서 곡물을 수확하게 만들어주었다. 수확한 곡물은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인류는 수개월 이상 먹을 수 있는 양의 곡물을 창고에 저장하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인류의 안정적 생활을 위협하는 강력한 적수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적수라고 해서 덩치 크고 무서운 호랑이나 사자 같은 포식자가 아니다. 체구도 작고, 다른 포식자들의 먹이 역할을 충실히 하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쥐가 거대한 위협이었다.

 

그런데 쥐만큼 무서운 동물은 세상에 없다. 쥐는 영리하고, 번식능력이 탁월하여 자칫 방심하면 인류가 먹을 모든 것을 바닥낼 수 있다. 더구나 쥐는 인류에게 온갖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좋지 않은 능력도 가지고 있다.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흑사병은 1343년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비단길을 통해 유럽의 크림반도까지 전파되었다. 그리고 크림의 항구에서 배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간다.

 

전염병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은 검은쥐였고, 쥐의 피를 빨던 동양쥐벼룩이 원흉이었다. 흑사병 대유행기에 희생된 유럽인은 최대 2억 명, 최소 8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60%로 추산되는 엄청난 숫자였다.

 

고양이 부조(relief, 浮彫), 2019년 4월 인천시 중구 북성동에서 촬영

 

일부 학자들은 흑사병의 유행을 마녀사냥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중세유럽에서는 고양이를 마녀와 연결시켜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고양이들이 도륙당하기도 했다. 고양이의 감소는 쥐를 잡을 포식자의 공백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흑사병의 대유행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원인 중에 하나는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구심은 가질만하다.

 

많은 현대인들은 고양이를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여긴다. 그래서 반려묘(伴侶猫)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그런 의미로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았다, 예상 가능하지만 고양이는 쥐를 잡기 위한 용도로 키웠던 동물이다. 인류와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고양이의 최초 발상지는 고대 이집트다. 이는 농경의 시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대 이집트는 지중해 인근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나일강의 정기적 범람으로 이집트 평원의 토양은 상당히 비옥하였다. 로마제국 식민지가 된 이후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주요 밀 공급기지 역할도 했다. 이는 당시 이집트의 농업생산력이 상당하였음을 의미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인류와 고양이의 인연은 농경생활을 하는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된다. 잉여곡물들은 쥐의 출입을 막아내는 고양이 덕분에 큰 손실 없이 인류의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고양이는 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의 유행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였다.

 

고양이는 인류의 생존을 지킨 진정한 영웅이다. 충분히 칭송 받지 못한 영웅인 언성 히어로(unsung hero)다. 고양이가 지금까지 한 역할은 신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비슷하다. 그래서 고양이는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 과언이 아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 반려동물 뉴스 노트펫,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