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가 만든 화룡점정
[노트펫] 기린지재(麒麟之才), 기린처럼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사자성어다. 여기서 기린은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이 아니다. 동아시아인들의 상상 속에서만 사는 영험한 동물로 청룡(靑龍), 주작(朱雀) 같은 전설 속의 동물이다. 기린지재와 같이 기린은 좋은 인재를 뜻할 때 자주 비유되곤 한다. 장래가 축망되는 젊은 유망주들을 흔히 기린아(麒麟兒)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중국 드라마 중에는 기린지재 같은 인재가 등장하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랑야방(瑯琊榜)이다. 드라마에는 전국의 인재를 재능의 순서대로 발표하는 랑야방(瑯琊榜)이라는 곳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곳 서열 1위는 늘 매장소라는 인물의 차지다. 그러니 매장소라는 기린을 자신의 수하로 거두는 인물이 차기 황제가 된다는 소문이 전국에 자자하게 퍼진다.
랑야방은 양(梁)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조금만 보고 있으면 양나라는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절 세 번째 남조(南朝) 국가인 양나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랑야방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속편까지 제작된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인 양나라에는 상상 속의 동물과 관련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기린이 아닌 용(龍)이다. 전설의 주인공은 양나라를 대표하는 화백 장승요(張僧繇)였다.
장승요는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그림들을 남겼다. 혼란의 시기였던 남북조시대는 종교에 귀의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그래서 당시 불화(佛畵)가 유행하였는데, 이 불화야말로 장승요의 주전공 분야였다. 그 외에도 그는 일반 백성들의 삶을 묘사한 풍속화도 물론 용과 같은 전설 속의 동물들이나 호랑이 같이 실존하는 동물들도 그렸다.
양나라의 수도는 금릉(金陵)이다. 금릉은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수도 건업(建業)으로 금릉으로 개명된 후 명나라 시절 남경(南京)으로 다시 이름이 바뀐다.
장승요는 양의 도성인 금릉의 안락사(安樂寺) 벽면에 전설의 동물을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점을 기이하게 여기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장승요가 용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는 실로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용의 눈동자를 그리면 그림 속의 용이 살아나서 저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어떤 사람은 그 믿기 어려운 말의 진위를 시험하였다.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것이다. 그러자 눈동자를 가진 용은 하늘로 승천하고 말았다. 그림 속에 있던 용은 모두 네 마리였다. 다행히 세 마리의 용들은 눈동자가 없어서 승천하지 못하고 계속 벽에 남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이 있은 이후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기게 되었다. 물론 전설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삼척동자라도 이 이야기는 허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을 머릿속에서 생각나게 한 일은 지난 주말 동네 상가 공사현장에서 일어났다. 고양이는 미장공사를 갓 실시한 상가의 입구 곳곳에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물론 고양이는 비의도적으로 그런 일을 한 것일 것이다.
고양이의 발자국은 자칫 밋밋하게 보일 뻔했던 콘크리트 바닥을 귀엽고 매력적이게 만들어주었다. 상가 주인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고양이라는 화가가 자신의 발바닥으로 화룡점정을 한 것으로 보이기만 한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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