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와 주인 그리고 엄마

[노트펫] 배트맨은 슈퍼맨과 함께 DC유니버스(DC Universe)를 이끄는 양대 히어로다. 배트맨이 스크린이나 코믹북에서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가장 큰 이유는 특출난 능력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배트맨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조력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인물 내면에 어두움과 외로움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배트면의 내면을 보완하고 그나마 밝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이가 집사(steward, 執事) 알프레도다.

 

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도련님 '배트맨'의 스트레스를 받아주기도 하고,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주기도 한다. 그런 집사 알프레도 앞에서는 제 아무리 강철 갑옷을 두른 배트맨도 철없는 10대 청소년이 되고 만다. 온갖 투정을 다하고 푸념을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분)과 집사 알프레드(마이클 케인 분)

 

하지만 배트맨의 집사는 그런 심리적인 역할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알프레도는 배트맨이 빌런(villain)들을 대상으로 한 작전이 시작하면 확실한 현장 지위를 맡게 된다. 알프레도는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작전 중인 배트맨을 구체적이고 매우 치밀하게 도와준다.

 

그래서 알프레도가 없는 배트맨은 상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렇게 집사라는 직업은 주인 혹은 주인 가문을 위해 묵묵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키우면서도 집사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까칠한 고양이가 상전(上典)이고, 그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집사로 비유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상전은 종을 부리던 양반들을 일컫는 용어다.

 

그런데 위의 비유는 고양이와 사람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잘못 이해하여 만든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결코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고양이는 결코 자신을 사람들의 상전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사람을 자신의 집사로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야생의 고양이는 생후 3~4개월이 되면 대부분 어미의 품을 떠난다. 새끼가 떠나지 않으면 어미가 사라지게 된다. 이후 어린 새끼는 먹이 조달은 물론 안전 확보 같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 야박하지만 그게 야생의 삶이다.

 

사람의 품에서 사는 집고양이들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주인들은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음식, 안전 등 생존에 필요한 조건들을 완벽하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집고양이의 신체는 비록 성체(成體)로 성장하였지만, 다른 면은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의 새끼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미에게 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천사 같은 어미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덩치는 커졌지만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다 큰 집고양이는 그저 사람에게 보채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집사가 아니다. 또한 주인도 아니다. 주종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키워주는 사람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미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집사가 아닌 엄마가 맞는 표현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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