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양이를 소환한 드라마 스토브리그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노트펫] 지난 겨울 나에게 최고 드라마는 한 편이 아닌 두 편이었다. 워낙 좋은 작품들이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드라마 지존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첫 번째 작품은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처럼 영원히 늙지 않는 배우 한석규가 주연을 맡은 한국판 메디컬 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준 ‘낭만닥터 김사부2’였다. 흔히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전편 못지않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 편은 멋진 시니컬(cynical)이 무엇인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배우 남궁민이 주연을 맡은 스포츠 드라마인 스토브리그(stove league)였다. 전문용어인 스토브리그는 난로를 뜻하는 스토브(stove)가 있는 야구 비시즌 동안 벌어지는 프런트 직원들의 머리싸움을 의미한다. 그 기간 동안 각 구단은 필요한 전력을 보강하면서 새 시즌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시즌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두 드라마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본방사수를 했던 것은 스토브리그였다. 필자는 야구 시즌이 개막되면 반드시 몇 경기는 경기장에서 직관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야구팬이다. 그러니 스토브리그에 열광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일이었다.

 

스토브리그의 재미를 배가시킨 이는 만년 꼴찌 팀인 드림즈의 이세영 운영팀장(박은빈 분)의 엄마(윤복인 분)였다. 엄마가 딸에게 별 생각 없이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대사에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단서들이 넘쳐 흘렀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그녀야말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 있는 해탈한 존재 같았다.

 

극의 전개에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한 대사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들려준 오징어 다리를 쥐꼬리로 둔갑시킨 이야기는 1970년대 감수성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쥐꼬리를 숙제로 제출하게 했다. 쥐로 인한 각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지금이나 작고 날랜 쥐를 잡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잔꾀를 부렸다. 말린 오징어 다리에 검은 구두약을 발라서 쥐꼬리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런 가짜 쥐꼬리를 들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공책 한 권이나 연필 한 자루를 상품으로 주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쥐를 잡아오게 할 정도로 1970년대는 쥐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쥐를 잡기 위해 동네 곳곳에 쥐약을 뿌려놓았다. 그런데 쥐약은 쥐는 역할도 했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은 동물들을 잡기도 했다.

 

가장 큰 희생자들은 거리에서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는 길고양이들이었다. 배고픈 길고양이들에게 먹음직하게 보이는 쥐약이나 쥐약을 먹고 죽은 쥐의 사체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길고양이를 위해 어느 캣맘이 준 고양이밥, 2013년 촬영

 

70년대만 하여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마당에 자신의 고양이를 풀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집고양이들은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나면 으레 몇 시간 외출을 하고 해질 무렵이 되면 다시 귀가하곤 했다. 그게 일상적인 한국 집고양이들의 하루였다.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셨다. 언뜻 보기에도 많은 양이었다. 하지만 나비는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고양이에게 왜 그렇게 많은 밥을 주시는지 궁금해서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고양이를 배불리 먹이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이상한 것을 먹고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몇몇 친구들의 고양이들이 쥐약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 떠올랐다. 고양이에게 고봉밥을 주신 것은 어머니의 그런 심모원려(深謀遠慮)였고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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