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태비 고양이, 조선의 퍼스트 캣
[노트펫]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만물박사다. 대표적인 실학자 중에 한 명인 이익이 활동하던 17~18세기는 성리학의 전성시대였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이라면 응당 성리학에 심취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익은 자신의 폭넓은 지적 욕구를 성리학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그의 지식에 대한 열정이 넘쳤기 때문이다. 이익의 관심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철학은 물론 과학, 자연 같은 전형적인 이과 학문에게까지 미쳤다.
그 결과 이익은 대형 백과사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성호사설(星湖僿說)이라는 저서를 남긴다. 그래서 일부 사학자들은 이익의 방대한 학문의 세계를 ‘성호학’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호사설에는 역사와 생물학이 뒤섞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19대 임금 숙종(肅宗)이 궐내에서 산책을 하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이를 키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고양이가 임금이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냥줍’ 스토리인 셈이다.
고양이가 어떻게 궁궐 안에 들어갔을지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정문을 통해 당당히 입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구중궁궐의 담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궁의 담은 사람에게는 넘기 어려운 높이와 위험이 있겠지만 고양이에게 그런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높은 담벼락을 자유자재로 휘젓고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숙종이 냥줍을 한 장소는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이 아니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고종 즉위 후 중건될 때까지 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법궁인 경복궁의 역할을 대신 한 것은 창덕궁이었다.
숙종도 창덕궁에서 정사를 수행한 조선 후기의 임금 중 한 명이다. 숙종 30년(1704년) 12월에 대보단(大報壇)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대보단은 큰 은혜를 기리는 제단이라는 뜻을 가진 조형물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대규모 원병을 보낸 명(明) 신종(神宗)의 덕을 잊지 않겠다는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청(淸)의 전성기였다는 것은 감안하면 대보단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세운 제단이다. 이렇게 역사적 정황이나 기록을 보면 숙종이 길고양이를 냥줍한 장소는 창덕궁임에 분명하다.
조선의 왕을 집사로 선택한 고양이는 금덕(金德)이었다. 숙종이 하사한 금덕이라는 이름을 보면 고양이의 모색을 추정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흔한 고양이 태비(mackerel tabby)가 아닌 치즈 태비(cheese tabby)로 보인다.
금덕은 치즈 태비로 추정되는 금손(金孫)이라는 새끼를 낳았다. 애묘가 숙종에게 금손도 어미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숙종이 신하들의 보고를 받거나 결재를 할 때도 금손이를 안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 금덕, 금손으로 이어지는 숙종의 치즈 태비들은 조선에서 보기 드문 퍼스트 캣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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