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강아지 이름 '치코'
미국에 치코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많은 이유
[노트펫] 개나 고양이는 자신의 삶 대부분을 주인에게 의존한다. 주인은 엄마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물론 아늑한 잠자리까지 챙겨준다. 심심할 때는 같이 놀아주기도 하는 주인이야말로 이들에게는 천사와도 같다. 두 동물은 주인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
그래서 개와 고양이는 육체적으로 성장해도 정신적으로는 아이 단계에서 머무는 경향이 있다. 모든 동물들은 성장하면서 어미로부터의 의존을 점차 줄이고 독립하지만 개나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그런 보이지 않는 규칙에서 예외이기 때문이다. 주인과 이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 밖에 없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주인과 맺은 인연은 그 생애 끝까지 간다.
개나 고양이는 부모와 같은 주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마치 사람처럼 이름을 가지게 된다. 주인으로부터 이름을 내려 받은 이들은 평생 그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있는 현상이 아닌 만국공통이다.
개나 고양이의 이름에는 그 이름을 작명한 주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떤 경우에는 주인의 깊은 철학이 담긴 이름들도 있다. 그런 이름을 가진 동물들은 괜히 품위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최대한 성의를 가지고 지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지금까지 들어본 반려동물의 이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치코(Chico)였다. 치코는 어린 아이, 소년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미국인들도 곧잘 사용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아는 스페인 단어로 보면 된다.
재작년 한국 나이로 환갑이 된 치코의 주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고 있다, 그 분에게 가족은 멀리 있어서 보기 힘든 형제를 빼면 치코가 유일하다. 치코 주인과 대화를 하면 대화 소재의 절반은 치코와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30분 정도 대화하면 다양한 종류의 치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누워있는 치코, 자는 치코, 뛰는 치코, 공을 물고 있는 치코 등 수 많은 치코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연령별 치코들도 볼 수 있다. 어린 치코, 젊은 치코, 나이 든 치코까지.
치코 사진을 원 없이 본 후, 치코 주인에게 왜 개의 이름을 치코로 작명했는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대답은 철학적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치코가 영원히 어린 아이처럼 행복하길 원해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세상 근심은 어린이의 몫이 아닌 부모의 몫이었다. 치코의 주인도 그런 생각에서 치코라는 이름을 자신의 개에게 붙여준 것이다.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개의 이름이 치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깊은 감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멋진 강아지를 만났다. 개의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치코”라고 했다. 그리고 개 주인의 뒤이은 말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에는 치코가 너무 많아요.”(There're so many Chicos in America.).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수컷 강아지 이름의 태반은 치코였다. 물론 고양이도 있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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