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도 극복한 어미 고양이의 눈빛

몇 년 전 필자가 살던 아파트에는 사진과 같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입주자가 있었다. 2013년 촬영

 

[노트펫] 몇 달 전 평소와 다름없이 동네 골목길을 걸었다. 정감 있는 골목은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이용하다보니 이제는 눈을 감고 걸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그날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이 골목에서 눈에 띄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관찰 모드로 접어들었다. 누군가 길고양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맛있는 밥과 신선한 물을 놓고 간 것 같았다.

 

밥그릇 옆에는 생후 두 달도 안 된 코숏 고등어 태비 한 마리가 보였다. 새끼는 행인의 등장에 놀라서 식사를 잠시 중단한 것 같았다. 수염을 보니 음식물이 약간 묻어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새끼 고양이에게 낯선 사람의 등장은 공포심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고양이는 간절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애간장을 녹이는 목소리였다. 새끼가 구슬프게 운다는 것은 주변에 자신이 믿을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그때, 무엇인가 번쩍 빛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태양의 힘이 하루 중에서 가장 강한 오후 2시였다. 하지만 그 섬광은 강한 햇빛까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였다. 빛의 발원지는 밥그릇에서 불과 4~5미터 떨어진 계단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단 위의 고양이 눈에서 나는 빛이었다.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는 계단 위에서 밥이 있는 곳을 향해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필자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상황을 추리해보면 고양이 모자(母子)가 밥을 같이 먹다가, 인기척이 나자 조심성 많은 어미는 얼른 자기 몸을 숨겼다. 하지만 아직 경계심보다는 식탐이 강한 새끼는 계속 밥을 먹다가 어미와 잠시 떨어진 것 같았다.

 

불안한 새끼는 어미를 부르고 있고 어미는 바로 근처에서 행인이 지나가기만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새끼 고양이의 정신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지나가던 행인인 필자가 가까이 접근해도 새끼 길고양이들의 장난은 계속 되었다. 2019년 촬영

 

귀가 후 오래 전에 작고하신 할아버지의 생전 말씀이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 사셨는데, 간혹 밤에 호랑이 눈빛이 반짝였다는 말씀을 해준 적이 있다. 호랑이의 안광(眼光)이 천리(千里)를 가는 날이면 사람들은 잠자기 전에 문단속을 철저히 해서 호환(虎患) 피해가 없도록 주의했다고 한다.

 

고양이 모자를 본 시간은 낮이었다. 하지만 어미의 강렬한 모성애는 자신의 안광이 밝은 햇빛을 극복하고 환하게 비출 수 있게 해주었다. 고양이가 자신의 먼 친척인 호랑이보다 대단한 안광을 밝힌 것이다. 바로 그날은 고양이라는 동물의 위대한 모성애에 감탄한 날이기도 하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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