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늑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땅

산비탈을 잰걸음으로 오르니 땀이 흥건합니다. 고갯마루에 올라 점심을 먹으려 주섬주섬 싸온 음식을 풀었습니다. 가을의 캐시미르는 햇빛이 있을 땐 포근하다가도 해가 구름 뒤로 숨으면 몸을 움츠려들게 합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걸 보고 있으니 어린애 마냥 실룩실룩 거리며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네 나이가 몇인가?"
"22살이요"
"결혼은 하였는가?"
"네"
"부인의 나이는?"
"비밀인데요"
"한국에선 그냥 물어봐, 그리고 물어보면 보통 다 대답해" 점심을 들고 온 목동은 가이드가 괜찮다고 얼르자 그때서야 입을 열었습니다.
"18살이요"


내 입에서 절로 부러운 말이 나왔습니다.

"좋겠다"

 

참 웃기는 대화입니다. 결혼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부모가 정해준 혼처지만 불만이 전혀 없는 부부입니다. 부모는 잘 아는 걸까? 자기 자식만 알아서는 안되고, 남의 자식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잘난 것이 좋은게 아니라 잘 맞는 것이 제일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나만 알고 하나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혹 맘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부모가 정해준 사람이 꼭 맞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제 질문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목동은 나무 뒤에 숨어서 결혼전에 한 번 보기는 했다고 합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선녀와 나무꾼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요.

 

어제는 성지인 빙하 트레킹을 했고, 오늘은 4일에서 7일이 소요된다는 캐시미르 트레킹을 당일 트레킹으로 시간을 줄여 어디를 어느 만큼 가는지 눈으로 대신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넓은 초원에 꽃이 핀 봄이 연상되었고, 뛰어놀 양떼, 맑은 호수와 나무가 울창한 숲까지…

 

라닥은 거칠고 메마르지만 신성한 트레킹이라면 캐시미르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트레킹입니다. 특히 라닥은 신의 땅이지만 캐시미르는 인간의 땅이어서 좋습니다. 마치 소풍을 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초지를 걷고 나무 아래서 땀을 닦아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트레킹을 할 수 있습니다.

 

손막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가다보면 라닥의 누브라 계곡이 나온다니…

 

스리나갈로 돌아와 9시 30분에 결혼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저도 신부측의 일원이 되어 꽃잎 던지는 동자 역할을 했습니다. 결혼의 절차가 길고 복잡했지만 특이한게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소설에 썼던 집시의 결혼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욕을 하는게 아닐까? 욕을 하는 그들의 바람은 욕보다 더한 풍파를 헤치고 나가라는 축복이 아닌가? 이들이 집시는 아닐 것입니다. 집시는 인도를 떠난 후 다시는 인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의해 펠라를 떠나야 했음에도 그 주변에서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지중해 연안이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갈리자 비잔틴에 속했고, 그로인해 유럽 전역으로 특히 동부 유럽에 넓게 퍼져 자리 잡았습니다.

 

결혼식의 신랑, 조금 늙었다.. 그런데 집도 결혼식 비용도 여자측이 다 낸단다. 남자 형제들은 여동생을 시집을 먼저 보내려 돈을 만드느라 결혼이 늦단다.

 

신부측의 일원이 되어 꽃잎을 던져주었다.

 

재미난 일은 이들이 거주하던 파르티아산맥(루마니아 북부의 산맥) 아래 어느 부족이 유대교로 개종했고, 이들이 유럽 각지에 퍼져 나가며 유럽의 유태인으로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본토의 유태인과 구분해 아쉬케나지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유태인은 강경 세력이 아닙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 대거 입국한 유태인, 즉 아쉬케나지가 문제의 원인입니다. 현재도 이스라엘의 총리부터 대부분의 지도자는 2차 대전 때 가족이 참담한 박해를 겪은 유럽 이주 유태인들입니다. 로마에 의해 2차 봉기가 제압되고 마사다 요새에서 960명 중 7명만 남고 전부 자결한 후 유태인들은 이스라엘을 떠나 각지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돈 곳은 북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 일원이었습니다. 유럽 전역으로 뻗어 나간 건 그들이 아니라 가짜 유태인이라 할 수 있는 아쉬케나지입니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요? 그들이 집시일 확률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도 나치는 집시와 유태인을 동일하게 봤고, 2차 대전 중 가장 많이 죽은 사람도 순위로 보면 러시아 농민 – 집시 그리고 유태인입니다. 이런 역사적 근거는 여럿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알함브라 칙령으로 쫓겨났을 때도 유태인과 집시는 같은 운명, 같은 대상이었습니다.

 

집시의 집이다. 여름엔 이렇게 산에서 거주하고 겨울엔 산을 내려가 강가에서 지낸단다.

 

한 번 더 소설적 상상을 해봅니다. 알렉산더가 낳은 집시는 유태인의 가면을 쓰고 세상을 지배합니다. 알렉산더의 꿈을 그들이 결국 이룩한 것 아닌가? 여행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풍부한 상상과 에너지를 몸 안에 주입시켜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집시의 문화가 유럽 뿐만 아니라, 이 곳 캐시미르의 결혼식장에서도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캐시미르 트레킹을 마무리합니다.

 

럭셔리 보트 하우스 입구, 페르시아 장식의 양식이라 우아하다.

 

보트 하우스의 응접실, 수시로 캐시미르 차와 다과를 갔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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