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값 물어준다 소리 못할 걸' 동물 법적 지위 바뀌면 확 변하는 것

2021.03.09 17:08:50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노트펫] 정부가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에서 비물건으로 바꾸는 민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1인 가구가 크게 늘면서 달라진 우리 사회 모습을 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에서 민법을 손보기로 하면서 동물, 특히 반려동물의 지위도 바꾸겠다는 겁니다. 

 

이미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동물보호복지는 물론 반려가족들 역시 반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의 지위가 물건에서 물건이 아닌 비물건으로 바뀌면 당장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는 걸까요?

 

정부는 민법과 민사집행법 2개 법안을 손본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민사집행법 개정은 이미 법안도 발의돼 있는 것처럼 반려동물을 압류 금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반려동물은 물건이고 민사집행법 상 압류 금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채권자가 채권 회수를 이유로 압류를 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세금 징수를 위해 반려동물을 압류할 수도 있죠.

 

두 가지 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실제 해외 사례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세금 징수를 이유로 체납자들의 반려견들을 압류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개들이 공매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은 물론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민법의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민사집행법보다 체계상 더 위에 있는 민법이 핵심인데요. 지난 2018년 발간된 '민사법 체계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라는 법무부의 연구용역 보고서가 그것입니다.

 

이미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권에서는 동물을 비물건 혹은 제3의 존재 등으로 규정하는 법체계를 갖고 있는데요. 우리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해 동물의 법적 지위 변경 논의가 이전보다 활발해졌습니다.

 

그해 초 정의당 이정미 전 의원이 동물의 법적 지위 변경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반려가족인 데다 취임 얼마 지나지 않아 유기견을 입양하면서 동물보호복지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국내 대표 동물보호 단체인 카라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 '동물권행동 카라'로 단체명을 바꾼 것도 2018년의 일입니다.

 

이 때 나온 보고서이니 법적 지위 변경에 대한 정부의 방향성을 가다듬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윤철홍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민법 개정과 관련 제98조에 동물의 법적 지위 조항을 신설하고, ①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②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 ③동물에 대해서는 다른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물건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는 3개 조항을 넣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미 유럽권에서 채택하고 있는 조항들입니다.

 

동물을 물건에서 제외하게 되면 동물이 물건임을 전제로 규정됐던 조항들 가운데 부조화 내지 충돌될 수 있는 기존 조항들을 같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이 죽거나 다쳤을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 동물에 대한 압류를 제한할 것인지, 제한한다면 그 범위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등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이정미 전 의원의 법안에 대해 당시 법사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동물이 물건인 현재 상해를 입혔을 경우 교환가치만 배상해줘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펫샵에서 분양하고 있는 같은 품종의 분양가를 참고해서 줘도 된다는 의미죠. 치료비가 소위 교환가치를 넘어설 경우 받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물론 추후 돌봄비용과 정신적 충격 등에 대한 위자료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여느날처럼 산책을 나갔다가 다른 개에게 물리거나 혹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큰 상처를 입어도 주인은 하소연할 곳이 없게 됩니다. 이미 현실에서는 치료비를 전부 물거나 위자료까지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현재 법 테두리에서는 보호자들은 '법대로'하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변호사와 논의해봤자 배상액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말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게 현실입니다. 쥐꼬리만한 배상금을 받자고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들어갈 실익이 없으니까요.

 

일부 동물병원이나 반려동물 업소에서는 '법대로' 하겠다는 보호자를 더 가볍게 본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이런 사정에서 피해 보호자들은 한풀이라도 할 요량으로 반려동물 사고를 SNS에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이 걸맞는 배상과 사과는 받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업장 문을 닫게 만드는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죠.

 

동물이 물건에서 벗어나면 즉, 물건보다 상위의 생명체가 되면, 물론 반려동물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애착관계 등을 고려해 교환가치를 넘어서는 배상의 문이 열리게 되고,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개값 물어주고 말지' 이런 소리는 나오지 않게 되는 겁니다.

 

윤철홍 교수는 이런 취지에서 민법에 '동물의 살상시 손해배상' 조항을 신설하고, '①가정에서 사육하는 가축이나 영리목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닌 동물을 상해한 자는 치료비용이 동물의 가치를 초과한 때에도, 신의칙상 적절한 범위 내에서 치료비용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②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동물을 살해한자는 동물의 보유자 혹은 그의 가족이 입은 정신적인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세부적으로 규정할 것도 제안했습니다.

 

동물의 법적 지위 변경으로 바뀔 수 있는 또다른 하나는 동물보호법의 강화입니다. 반려동물 관련 형사 사건의 경우 현재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와 재물손괴죄 혐의 두 가지를 함께 묻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재물손괴죄가 처벌이 더 무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근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학대를 통해 죽인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법이 바뀌었고, 나머지 학대에 따른 상해에 대해서는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적용됩니다. 재물손괴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벌금에 처해지게 됩니다.

 

동물이 물건을 넘어서는 생명체가 되는 만큼 재물손괴죄보다 더 높은 처벌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논리가 생깁니다.

 

법무부는 일단은 TF 구성을 통해 법적 지위 변경을 논의하고 올해 하반기 법안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국회 통과 과정이 남아 있는 만큼 이제 공론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려가족 1000만 가구 시대 행정부와 입법부의 공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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