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유비무환

[노트펫]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손자병법(孫子兵法)은 현대인에게도 적용 가능한 인생의 지혜가 많다. 그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불리할 때는 달리는 것이 좋다”는 뜻을 가진 주위상(走爲上)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우직하게 고집을 부리지 말고 후일을 기약하는 게 좋다. 전격적이고 과감한 철수는 합리적인 판단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들인 본전이나 노력에 사로잡히다가는 다음이라는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고양이는 손자병법에 있는 ‘주위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몸소 실천까지 하는 동물이다. 귀찮은 동물이나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하면 고양이는 햇볕이 잘 들고 따뜻한 좋은 자리라도 미련 없이 털고 일어난다. 아무리 그곳이 명당이어도 고양이는 과감하게 손절한다. 그게 고양이가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본능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자신의 뒤를 추격하던 개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이렇게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무 위에 올랐다. 주위상의 미덕을 실천한 것이다. 2015년 인천에서 촬영

 

고양이가 미래를 기약하는 곳은 다른 동물의 위협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가볍고 날랜 몸을 가진 고양이는 천적이 도저히 접근하지 못하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몸을 숨긴다. 그런 곳에 오른 고양이는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관망한다. 고개만 빼곡히 내민 상태에서 주변 정세를 살핀다. 그리고 위협이 사라지면 비로소 내려온다.

 

그런데 제 아무리 운동신경이 뛰어난 고양이라도 이런 전략적 후퇴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준비하는 일이다. 이는 전문 산악인에게는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등산화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자신보다 덩치 큰 개와 무모하게 싸우지 않는다. 이렇게 높은 나무 위에 오른 고양이는 빛나는 내일의 태양을 당연히 볼 수 있다. 2015년 강원도에서 촬영

 

공자와 맹자의 학풍을 계승하는 유가(儒家)의 기본 경전을 사서요경(四書五經)이라 한다. 사서에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이 있고, 오경에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가 있다.

 

오경 중에 하나인 서경에는 평소 우환에 대비해야 후일 걱정이 없다는 뜻을 가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비록 서경을 읽지는 않았지만 고양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발톱을 반복적으로 긁어댄다. 발톱이 날카로워야지 천적이 자신을 위협하면 높은 곳으로 쉽게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고 고양이가 할 일이 없어서 앞발톱을 계속 긁는다고 흉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는 고양이의 스크래칭(cat scratching)은 미래를 준비하는 고양이의 유비무환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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