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펫] 초등학교 재학시절 키웠던 고양이 나비와 스피츠 강아지 빠루는 하늘의 별이 된 지 이미 수십 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 두 녀석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필자의 마음속에는 추억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이 글을 쓴 햇볕이 좋은날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의 하늘을 보면 두 마리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나비와 빠루는 다정한 친구였다. 하지만 먹을 것을 앞에 놓고는 그렇지 않았다. 두 녀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묘한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나비의 것은 나비의 것이지만, 빠루의 것은 나비가 원하면 나비의 것이 된다는 공정하지 않은 규칙이었다.

 

당시만 해도 개와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집은 거의 없었다. 핸드 메이드 사료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가족들의 밥을 챙기면서도 나비와 빠루의 밥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나비가 빠루에 비해 한 살이 많았다.

 

어머니는 그래서 항상 나비부터 먼저 밥을 챙겨주셨다. “동물도 어른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평소 소신이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어려운 사자성어를 처음들은 것도 나비와 빠루의 식사 순서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를 마친 나비의 태도였다. 나비는 게눈 감추듯이 빠른 속도로 밥을 먹고 빠루의 밥을 호시탐탐 노리곤 했다. 나비가 앞발로 빠루의 머리를 치면 “밥그릇을 넘기라”는 신호였다.

 

밥을 먹는 속도가 느렸던 순둥이 빠루는 나비가 그렇게 나오면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특히 생선을 섞어서 밥을 할 경우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나비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비와 빠루는 식사 때마다 격리되는 신세가 되었다.

 

절구통에서 금붕어를 꺼내는 나비의 모습을 그림.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림에 있는 검은툭눈금붕어였다. 2021년 3월 필자가 그림

 

아버지가 어린 아들 삼형제를 동원하여 마당에 연못을 깊게 판 이유도 나비가 과거에 한 행동과 관련 깊다.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절구통에 물을 받아서 부레옥잠(water hyacinth)을 띄우고 금붕어 다섯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 만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는 나비의 소행이었다. 빠루의 신체적인 능력이나 운동 신경을 감안하면 높은 절구통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빠루가 앞발을 마치 손처럼 사용해서 절구통에서 금붕어 서리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빠루는 절구통을 마치 자신의 낚시터 혹은 고급 횟집으로 활용했다.

 

결국 아버지는 절구통에서 금붕어를 키우는 것을 포기하고 삽을 들고 연못을 파기로 결정하였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주인 가족 전체에게 삽질을 강요한 셈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나비의 이런 행동에 대해 어떤 질책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물고기 서리를 해도 꾸중을 듣지 않는 묘한 동물인 것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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