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설사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 세 명이 병원으로 들어왔다. 셋 중 근심 가득한 표정의 한 아이는 수건으로 감싼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동물병원에서는 공식처럼 흔한 상황이다. ‘부모님 허락 없이 어디선가 얻었거나 데려온 어린 강아지가 잘 놀다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겠지’ 라는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 펼쳐졌다. 역시나 였다. 

 

셋 중 한 아이가 강아지가 어제부터 잘 먹지 않고 잠만 자더니 새벽부터 설사를 여러 번하고 좀 전에는 토도 했는데 진료비가 얼마나 드는 지를 물었다. 강아지의 나이와 접종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길래 혹시 어디서 입양했는지 물었더니 시장에서 데리고 왔다고 한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성남 모란시장. 모란 시장은 5일마다 한번씩 여는 볼거리 많은 재래장터이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상품처럼 진열해 놓고 판매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파보 장염이나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성 질환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전반적인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어린 학생들은 강아지를 구입하는데 든 비용 이상이었을 검사비가 버거웠는지 제일 비용이 적게 드는 검사 하나만 해달라고 했다. 난 잠시 갈등하다 제일 필요한 검사를 해줄 테니 혹시 비용이 부족하면 나중에 줘도 된다고 말하고 파보와 코로나 바이러스 장염 검사를 실시했다.

 

생후 3개월 령 전후의 자견들에게 설사, 구토, 식욕부진 등의 소화기 증상이 있을 경우 바이러스성 장염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질병이다. 주로 파보바이러스(parvovirus),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디스템퍼바이러스(distemper virus)가 주요 감염원다.

 

이 중 일반적으로 파보바이러스가 가장 심한 소화기 증상을 나타낸다. 디스템퍼바이러스는 호흡기, 신경계 등 보다 전신적인 증상을 동반하고 코로나바이러스는 비교적 증상이 가볍고 예후가 좋은 편이지만 파보 바이러스와 복합 감염된 경우 예후가 나쁘다.

 

이들 바이러스의 진단은 키트검사를 통해 10분 내로 결과를 알 수 있다. 검사 결과는 안타깝게도 파보 장염으로 나타났다. 파보 장염은 바이러스를 함유한 변을 통해 감염되는데 바이러스 질환의 특성상 접촉 후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1-2주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치게 된다. 따라서 처음 데려올 땐 건강해 보였던 강아지가 일주일이 지나서 아프기 시작한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바이러스 자체를 치료하는 약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는 스스로 이겨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이 최선이다. 탈수 예방을 위한 수액요법과 항체가 많은 혈장 투여, 2차 감염예방을 위한 항생제 처치 등의 적극적인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많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특히 롯드와일러(Rottweilers), 도베르만(Doberman Pinschers), 래브라도 리트리버(Labrador Retrievers) 같은 특정 품종들은 특별히 더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질환이 그렇지만 파보장염 처럼 치명적인 질환은 무엇보다 예방이 최선이다. 특히 파보 바이러스는 환경에서 비교적 오래 생존하기 때문에 직접 접촉 뿐 아니라 옷, 신발 또는 곤충 등의 매개체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자견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는 위생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김진희의 심쿵심쿵'이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칼럼을 진행하는 김진희 수의사는 2007년부터 임상수의사로서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어린 반려동물 진료 분야의 베테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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