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급한데 자리 좀...' 바쁜 집사 꼭 면담하겠다고 그곳에 자리잡는 고양이
2021.11.01 15:12:07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노트펫] 화장실 비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가 웃음짓게 하고 있다. 급한 집사 앞에서 시치미를 뚝떼고 있는 모양새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열아홉 마리 고양이와 함께 하는 대부도 강이네. 제 나름의 개성을 갖고 있는 녀석들이 집사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도 제각각이란다.
어떤 녀석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어떤 녀석은 침대를 차지하고서, 어떤 녀석은 무릎팍을 호시탐탐 노린단다. 물론 시크한 적 눈길을 주지 않는 녀석도 있고, 집안의 높은 곳에서 집사를 제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는 고양이도 있단다.
보는 이들을 웃음짓게 한 녀석은 노련한 협상가 스타일의 화장실파다.
강아지도 그렇지만 고양이들도 집사가 볼 일을 보러 들어간 화장실 앞을 지키거나, 안에까지 들어와 민망하게 만드는 녀석들이 있다. 볼 일 보면서 뜻하지 않게 쓰담쓰담을 해줘야 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안 해주기는 몹시 힘들다.
그런데 이 녀석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집사가 볼 일을 보러 화장실 문을 열면 호다닥 따라들어와서는 평소 닫아놓는 비데 위로 폴짝 올라 빤히 쳐다본단다.
이날도 그랬다. 화장실 문을 열자 잽싸게 따라들어온 녀석, 틈을 주지 않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초롱초롱하고 진지한 얼굴로 '오늘은 반드시 말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들어줄 때까지 비켜줄 생각이 없는 모습이었다.
다음날 이 녀석은 또다시 그곳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입을 쫙벌리며 큰 하품까지 해댔다. 비키라고 하니 오히려 위로 올라가는 통에 헛웃음을 짓게 했다. 전날의 조치에 불만이 전부 해소되지 않은듯 좀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던 모양이다.
실내에서 사는 19마리에 더해 집으로 밥먹으러 오는 동네 길고양이들까지 챙기는 강이네. 눈도 뜨기 전부터 수유해 키운 고양이가 이 녀석까지 네 마리란다. 네 녀석들은 확실히 집사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고.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자신에게 돌아올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이 녀석이 나름 묘수를 찾은 셈이다.
대부도 강이네의 대장 지후 씨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둘만 남게돼 집사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같다"며 "이 녀석과 함께 두 마리가 빠르게 따라들어오곤 한다"고 웃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채움이다. 우주를 담은 초록빛 사파이어 빛깔의 눈에 고등어 무늬를 가진 채움이는 강이네의 외모를 책임질 정도로 출중한 모습을 자랑한다.
지난 2018년 시장통 박스 안에서 눈도 못 뜬 젖먹이 상태로 발견됐다. 함께 있었던 새끼 2마리는 죽어 있었다. 너무나 작아 살도 채우고, 복도 채우라는 의미에서 채움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고양이 전문가 지후 씨의 손길에 얼마 가지 않아 본모습을 되찾자 입양 문의가 쇄도했고, 새가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입양 이동 일주일을 앞두고 칼리시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칼리시 바이러스만 치료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순식간에 염증이 번지고, 뒷다리 성장판까지 망가졌다. 입양할 곳은 평생 처음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 차마 아픈 고양이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강이네의 일원으로 살게 됐다. 다 커서 4살이 된 채움이는 지금도 다리 길이가 확연히 달라 어릴 적 아팠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어릴 적부터 빛나던 외모가 빛을 바랜 것은 아니다.
지후 씨는 "채움이는 동생들한테는 엄청 잘하는데 형들한테는 덤비는 '불치의 중2병'을 가진 고양이"라며 "그럼에도 제 앞에선 엄청 순하면서도 잘 삐지는 어릴 적 어리광 부리던 그 모습 그대로의 채움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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