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을 빌려달라고 했던 친구

[나비와빠루] 제 18부 

 

온라인 커뮤니티.

 

[노트펫] 애국가 3절은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공활(空豁)은 텅 비고 매우 넓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어려운 말이다. 올 10월말~11월초 늦가을의 날씨는 애국가 3절에 나오는 공활을 유독 생각나게 해준다. 매년 반갑지 않는 단골손님처럼 서쪽에서 방문하는 미세먼지가 올해는 뜸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공원에서 즐겁게 산책하기 위해서는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 일상의 행복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나서는 것은 이제는 혹은 아직은 너무 먼 나라의 남의 집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의 도움만으로는 일상의 행복이 지켜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가 있어야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필자의 앞에서 산책을 하던 주민이 뒤에서 천천히 산책하는 필자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발 조심하세요. 앞에 누군가 크게 밟고 갔어요.”라고 외쳤다. 이미 으깨진 개의 분변은 여럿이 그것을 밟고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분 덕분에 운동화 발바닥에 이물질이 묻는 사고는 피했다. 안 그래도 잠시 쉬고 싶었다. 주변 벤치에 앉아 맑은 하늘을 보았다. 개똥이 준 짧은 휴식이었다. 문득 40여 년 전 필자에게 개똥을 빌려달라고 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기생충 박멸은 대한민국의 과제 중 하나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채변봉투를 나눠주며 학교에 제출할 것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쥐꼬리 제출 숙제 못지않게 난이도가 높고 지저분한 과제였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이런 숙제를 하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 해야만 했다.

 

1960~70년대 기생충 감염이 많았던 이유 중에는 인분을 비료로 쓴 것도 있었다. 사진은 그런 위험성을 강조하는 포스터다. 이런 홍보물은 동네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2021년 7월 달동네 박물관에서 촬영

 

하지만 일부 꾀돌이 학생들은 자신의 변을 가져오는 대신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지저분한 숙제를 아빠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심지어 동물의 똥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 한 명이 당시 쉬는 시간에 조용히 다가왔다. 그리고 무슨 엄청난 비밀을 털어 놓듯이 조용히 귓속말로 “너희 집에서 개(빠루를 지칭)를 키우지? 개똥 좀 빌려줘라. 내일 채변봉투에 넣으려고 그런다.”라고 말했다.

 

진지한 친구의 부탁에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개똥을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니. 나는 냄새나는 개똥이 필요 없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친구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옳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그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뒤에 발생했다. 제출한 대변에서 기생충이 대량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생충 검출 학생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구충약(驅蟲藥)을 무료로 제공했다.

 

얼마 뒤 그 친구는 “아빠에게 구충약을 드렸다. 너 덕분에 우리 아빠의 건강에 도움이 된 것 같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사실 친구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개똥을 빌려주지 않아서 며칠 동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넓은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고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니 안도의 한 숨이 쉬어졌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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