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그 강아지예요?' 목줄 대롱대롱 학대 강아지 어떻게 사나봤더니
2022.01.27 10:10:20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노트펫] "생각보다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어요. 천방지축 아이같은 모습이 가득해요."
지난 9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서 80대 주인이 목줄을 낚아채 강아지를 빙빙 돌리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물단체가 영상 속 장소를 찾아 만났을 때도 주인은 웃으며 빙빙 돌리는 모습을 반복했다.
'내 강아지 이 정도도 못하냐'는 투였다. 이제 1살이 됐다는 흰색의 작은 말티즈 강아지. 비록 아끼는 마음은 있었다고 강변했지만 '애완견'이라는 과거에 머물고 있는 주인의 모습은 한탄을 자아내게 했다.
동물단체의 설득 끝에 전 주인에게서 벗어나 새가정에 입양된 말티즈의 근황을 소개한다.
말티즈는 사건이 알려진 직후 활동가의 집에서 임시보호를 받다가 지난 18일 저녁 새가족의 품으로 왔다. 그 일이 있고나서 아흐레가 지나서다.
경기도 용인 단독주택에 사는 30대 부부로 3살 말티즈를 키우는 가정으로 왔다. 부부는 '다롱이'라는 과거의 아픔이 서린 이름을 벗겨내고, '봄'이라는 새이름을 선사했다. 그렇게 첫째 바람이에 이어 봄이가 가족이 되면서 '봄바람 형제'가 됐다.
부부는 바람이를 위해 만든 SNS 계정 이름도 '봄바람'으로 바꿨다. 두 녀석을 온전히 가족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에서였다. 그러면서 어느새 바람이 사진으로 가득했던 SNS도 두 녀석의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다.
새집에 온 봄이 모습부터, 형 바람이와의 긴장감 넘치는 첫 대면, 둘째날 아침의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산책, 눈덮인 공원을 마음껏 활보하는 형제, 나란히 간식을 기다리고 소파 위에서 함께 간식을 뜯으며 같이 잠드는 모습까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한다.
그 시간 동안 외모도 변했다. 덥수룩했던 털을 가지런히 정리한 모습은 확실히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애견미용사는 봄이의 미용을 부탁하는 갑작스런 주인의 요청에 따로 시간을 내고, 미용비도 받지 않았단다.
"봄이는 생각보다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천방지축 아이같은 모습이 가득해요. 이곳저곳을 누비고 모든 것에 반응하고 호기심도 많은 아이에요." 봄바람 아빠 성현 씨의 말이다.
사건이 알려지고 입양처를 구한다고 했을때 강아지가 없는 집으로 가는게 좋겠다는 이들도 많았다. 같은 아픔을 겪지 않고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봄이의 모습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현 씨 부부는 첫째 바람이를 키우면서 반려동물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 과정에 존중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단다. 그래서 바람이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고, 아침 출근 전, 퇴근 후 산책도 하루 일과가 됐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산책은 빼먹지 않는단다.
바람이가 주는 즐거움과 행복 만큼이나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져서였다. 이 때문에 다견가정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고 있었단다.
성현 씨는 "사건이 알려진 그 짧은 영상 속에서 봄이가 그동안 겪었을 삶을 생각해보니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며 "봄이에게 이 세상에는 따뜻한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말했다.
봄이를 데려오면서 다시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단다. 봄이가 큰 아픔이 있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기대만큼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준비가 됐는지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봄이를 데려왔던 첫날 곧장 시험대가 만들어졌단다. 다른 강아지들과 잘 어울려 노는 바람이. 봄이를 처음 봤을 땐 반겨하더니 가지 않고 계속 있는 모습에 표정이 변했단다. 마치 '이 친구 왜 안갔어?'라고나 할까.
성현 씨는 "바람이가 그때부터 놀지도 않고 모든 행동이 소극적으로 변했다"며 "봄이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주기 위한 선택이 바람이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만 같았고, 마치 제 자신이 유리선반 위에 놓여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이렇게 멘붕에 빠진 성현 씨를 단단하게 잡아줬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누구보다 믿음이 가는 배우자의 말에 성현 씨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고 다행스럽게도 둘째날부터 바람이와 봄이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가족으로서 융화되기 시작했다.
일주일 가량이 흐른 지금 바람이와 봄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형제의 꼴을 갖춰가고 있다. 아직 1살도 채 안돼 보이는 봄이는 형 바람이가 하는 데로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하고, 산책을 나설 때면 바람이를 졸졸 따른다. 장난감을 앞에 두고서도 바람이가 다 놀고나서야 나선단다.
바람이도 산책 나가서 봄이 곁에서 누군가 격한 행동을 하려하면 막아서고, 성현 씨가 곁에 없어 하울링하며 분리불안의 모습을 보이는 봄이를 챙길 정도가 됐다. '이 작은 두 친구들'이 서로를 조금씩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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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는 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줄이 바짝 당겨지면 그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려 웅크리고는 한단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트라우마도 활달한 성격에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봄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성현 씨는 "처음 용기를 내는 것은 제 선택이었지만 봄이가 우리곁에 온 것은 운명이라 생각고 봄이 곁을 늘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나가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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