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개, 남극정복 영예를 안겨주다
노르웨이 극지 탐험가 아문센(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 그는 1911년 12월14일 인류 최초로 5명의 탐험 대원, 썰매개 16마리와 함께 남극점에 도달한다.
아문센은 1905년 10월29일 스웨덴의 통치에서 독립한 지 만 6년이 갓 지난 신생 독립국 노르웨이에게 남극점 정복이라는 대단한 쾌거를 안겨 주었다.
영국 해군 장교인 스콧(Robert Falcon Scott)이 이끄는 남극탐험대는 아문센의 남극점 정복 33일 후인 1912년 1월17일 노르웨이 깃발이 이미 꼽혀 있는 남극점에 도착했다. 그 후 영국 탐험대는 귀환 길에 저체온증과 굶주림으로 대원 모두 사망하는 끔찍한 비극을 맞게 된다.
당시 영국 팀의 대장 스콧은 자기 부인에게 '나의 미망인에게'(To my widow)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캠브리지대학 부설 스콧극연구소가 2007년 이 편지를 스콧의 남극 도달 95주년을 기념하여 공개하면서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아문센과 스콧 원정팀의 남극정복 경쟁에서 결정적 승부처는 운송수단의 선택이었다. 아문센은 북극에서 이미 좋은 기억이 있는 개썰매를 선택한 반면 스콧은 만주가 고향인 말과 사람이 만든 스노 모빌을 선택했다.
그 결과 아문센의 썰매개들은 북극과 다름없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주인들을 무사히 남극점에 안내하고 귀환까지 책임졌지만, 스콧이 선택한 운송수단은 문제점을 일으키고 만다.
스노 모빌은 원정이 본격 시작도 되기도 전에 동파되어 쓸모없게 되었고, 만주말들도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 만주의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남극의 추위는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을 영국 원정대는 간과한 것 같다.
아문센이 데리고 간 썰매개들은 그린랜드 썰매개들로 조악한 먹이, 극한의 추위 그리고 장기 레이스에 이미 단련된 존재였다. 이에 반해 만주말들은 큰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사료가 필요했고, 극한의 추위에도 약해 남극점까지 가기에는 애당초 무리가 있었다. 남극원정 시작 전부터 양 팀의 승부는 결정된 셈이었다.
물론 이외에도 아문센의 원정대는 의류 선택에서도 좋은 판단을 하였다. 신사의 나라답게 모직물을 선택한 영국 팀과는 달리 노르웨이 원정대는 털가죽 옷을 선택하고 남극 현지에서 물개, 바다표범 등을 잡으며 식량과 의류를 최대한 활용한 점이 돋보인 선택이었다.
아문센 원정대는 또 빠른 진군을 위해 뛰어난 스키어들을 확보했고 비상식량 확보를 위해 고래를 잡는 포경선 사수를 선발하는 등 철저하게 그 목적에 맞는 대원 선발을 하였다. 이러니까 아문센 원정대는 영국 원정대에 비해 출발선에서부터 어느 정도 앞선 것은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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