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비껴간 보호소 개들을 구조한 이유..'기껏 대피시켰는데 안락사할판'
2022.03.16 16:43:30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노트펫]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경북 울진과 강원 동해안 산불 현장에서 이뤄진 개 집단 구조가 눈길을 끌고 있다.
화상을 입고, 다치고, 주인을 잃고 직접적으로 산불 피해를 입은 개들이 아닌 직접적으로는 피해를 입지 않은 동물보호소 보호견들의 구조가 그것이다.
동물단체 카라는 여전히 산불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있던 지난 10일 경북 울진 동물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던 개 28마리의 구조를 결정했다. 카라의 위탁보호소로 데려오는 동시에 일부는 전염병 위험 때문에 동물병원에 입원시켰다.
지난 4일 울진을 시작으로 동해, 강릉, 삼척 등 울진과 강원 동해안 지역을 산불이 휩쓸자 국내 동물단체들은 피해 지역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해 앞다퉈 달려갔다.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어온 동물의 피해는 이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산불 때문에 주인을 잃고 헤매는 개와 고양이, 가축이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축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땅에 박아놓은 짧은 목줄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은 개와 고양이, 소 등 가축들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특히 이번 산불이 손쓸 틈도 없이 빠르고 거세게 민가를 덮치는 바람에 주민들 역시 개와 고양이, 가축들을 살려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들이 속출했다.
카라도 다른 동물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처참한 현장 속에서 산불의 피해를 입은 개들을 포함한 동물 구조 활동에 나섰는데 그 중에는 울진군 동물보호소도 포함돼 있었다.
산불 초기 울진보호소도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다행히 현장에 갔을 당시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울진보호소는 다시 화마의 위협에 놓이게 됐고, 동물단체들이 군청을 간곡히 설득해 보호소 동물들을 개인 동물병원과 지자체 시설 등으로 긴급 대피시키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카라는 이후 현장 구조활동을 병행하면서 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던 즉, 동물보호관리시스템 내 유실유기동물공고에 기록이 있는 6개월령 이하 어린 강아지 22마리 전부와 대형견 6마리를 구조한 것이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구조가 아닌 반드시 필요한 구조라는 판단에서였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현재 여러 동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동물 구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형 재난에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지역 내 동물 구호와 재난 대응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늘 포화 상태인 시보호소에서는 이러한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집단 구조를 결정했다고 했다. 보호소가 재난 대처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 개들의 안전도 고려했다.
울진군 보호소도 여러 지방의 수많은 보호소들과 마찬가지로 믹스견들이 상당한 편이다. 6개월령 이하 강아지들은 더 클 경우 입양가족을 찾는 일이 매우 힘들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보호소에서 계속 지내게 되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안락사 명단에 오를 처지가 된다.
22마리를 뺀 대형견 6마리는 실제 안락사 일정이 임박한 상태였다. 기껏 화마를 피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대피처를 마련했더니 수용 능력 때문에 안락사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현장에서 구조되는 개체들이 들어올 경우 이같은 안락사 압박은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
전진경 대표는 "보호소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고, 울진군의 유실 동물 보호와 반환, 피해 동물 구조와 치료 등 재난 대응 동물구조 활동이 자리를 잡고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울진군청에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동물보호 행정을 요청했다.
지난 15일 울진군 보호소에 입과 코, 눈썹 등 얼굴 주변에 화상을 입은 개와, 함께 있던 개 이렇게 2마리가 입소했다. 보호소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카라가 예측했던 재난 동물들의 보호도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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