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비에게 납세미 두 마리의 의미
[나비와빠루] 제 35부
[노트펫] 아는 맛이 무섭다. 뇌가 기억하는 익숙한 맛있는 맛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입맛이 없는 날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그런 맛을 찾는 게 좋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는 비단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개나 고양이도 그렇다.
1970년대 주방은 본채와 떨어진 별채 구조였다. 당시 주방의 화력은 LNG로 만든 도시가스가 아닌 연탄이었다. 연탄은 화끈한 열 공급 능력에서는 도시가스를 도저히 따를 수 없다. 하지만 생선이나 육류를 굽는 요리를 할 때는 가스는 주지 못하는 독특한 풍미를 제공한다. 석쇠 밑으로 떨어지는 기름이 연탄에 닿아서 타면서 발생하는 독특한 풍미(風味)는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연탄만이 가지는 특장의 매력이다.
바닷가에 태어나 자란 필자는 어린 시절 거의 매일 생선을 먹었다.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경우, 대부분 조림보다는 구이를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의 입맛을 존중해서 당시 집에서 제공되었던 대부분의 생선요리는 구이였다.
생선의 종류도 철마다 바뀌었다. 염장을 해서 파는 고등어는 사철 내내 볼 수 있었고, 전갱이, 꽁치, 삼치, 갈치, 납세미(갈가자미) 등은 풍어기에 따라 식탁에 올랐다. 동해와 남해에서 나는 생선 대부분을 먹었던 것 같다.
나비에게는 주인 가족의 식탁에 생선구이가 오르는 날은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대가족의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나비는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마치 지남철처럼 어머니 옆을 졸졸 따라 다니면서 연신 “야옹”거렸다. 나비의 속셈은 뻔했다. 우리나라의 대표 먹방인 ‘맛있는 녀석들’에 나오는 ‘한 입만’을 계속 외치는 것이었다.
나비는 항상 사람의 식사에 앞서 식사를 했다. “야옹” 거리면서 어머니 옆을 지키는 나비는 이미 자기 밥을 많이 먹은 상태였지만, 생선구이 앞에서는 마치 사흘을 굶은 ‘공복의 고양이’ 같았다.
어머니는 나비의 그런 습관을 알기 때문에 생선구이를 하면 먼저 작은 그릇에 생선 한 마리의 살을 발라 놓았다. 그리고 나비가 야옹하면 한 점씩 주었다. 어머니는 나비와 마치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비는 생선구이 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기름이 많아 고소한 등푸른생선(external blue colored fish)은 서너 점 이상 먹지 않았다. 하지만 담백한 맛이 일품인 흰살생선(white fish)의 경우, 제지하지 않으면 계속 먹었다. 그 끝을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술꾼들은 자신의 주량을 소주 몇 병으로 계량화시킨다. 그래서 친구들과 마실 때도 그 정도는 먹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는 나비의 최대 생선 섭취 가능량을 납세미로 계량화시켜 그 이상은 과식으로 정하고 더 이상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나비가 그 최대치까지 가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납세미의 재고가 넉넉해서 나비가 물릴 때까지 구이를 양껏 먹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밥을 먼저 주지도 않고 순전한 공복 상태였다. 나비는 제법 큰 납세미 두 마리를 먹어치우고 물을 마시고 주방에서 떠났다. 배가 불러서인지 나비는 볕이 잘 드는 마당 한 구석에서 한 시간 넘게 잠을 잤다고 한다.
그날 나비는 자신의 먼 친척인 초원의 사자가 누를 잡아서 배를 충분히 채우고 늘어지게 잔 것과 다름없는 일을 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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