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족의 생계를 도운 고양이의 참새 사냥
[나비와빠루] 제42부
[노트펫] 어릴 적 집에서 키웠던 고양이 나비는 종종 현관 앞에 자신이 잡은 쥐나 새들을 마치 자랑하는 것처럼 전시해두었다. 어머니는 별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다가 그런 동물 사체를 보면 깜짝깜짝 질겁하기도 했다.
햇볕이 쨍쨍하던 그 봄날도 그랬다. 당시 필자는 마당의 평상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과일을 먹고 있었다. 현관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비명을 들렸다. 할아버지는 급히 신발을 신고 평소 징그러운 것은 잘못 치우는 며느리 대신 집게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평상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으셨다. 그리고 포크를 들고 사과 한쪽을 집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비의 계속되는 기이한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쥐는 술이나 담배처럼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존재여서 나비가 많이 잡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참새는 도대체 왜 나비가 그렇게 기를 쓰고 잡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인자한 분이다. 손자의 질문을 평소 끝까지 듣고 차분하게 대답해주셨다. 그날도 그랬다. 참새를 잘 잡는 고양이의 사냥 능력이 사람의 생활에 소중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그런 능력 덕분에 가족들을 잘 부양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물론 그 가족에는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얘기를 하면서 가을이라는 시기에 의미를 두었다. 마치 붓을 들고 중요한 것에 점을 찍는다는 방점(傍點)을 가을이라는 단어에 찍는 것 같았다.
수십 년 전 봄날에 들었던 할아버지의 가을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글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 가을이 되면 농부의 손은 바쁘기만 하다. 한 해 동안 농사지은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손실 없이 수확하기 위해서다. 농부의 땀방울이 일군 것과 같은 농산물은 가족들의 일 년 생활을 책임진다.
당시 할아버지의 집에는 낱알을 말릴 수 있는 마당이 있었다. 도둑이 많던 시절이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날이 되면 꼭 대문을 걸어 잠그고 말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낱알을 말리면 도둑은 막을 수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새 무리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른 집에는 없는 당신만의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닌 두 장씩이나 가지고 있었다. 당시 할아버지의 집에는 평소 쥐를 잡고 가을이면 참새 같은 곡식을 탐하는 새들을 잡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 덕분에 할아버지는 큰 손실 없이 낱알을 잘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없는 다른 집 상황은 달랐다. 어느 정도의 손실 감수가 싫으면 사람이 하루 종일 밀짚모자를 쓰고 긴 막대기를 휘둘러야만 했다. 하지만 곡식을 탐하는 새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본능에 따른 것이었다. 그야말로 필사적이다. 그러니 막대기로 손실을 막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할아버지는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보다 참새를 잡는 것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러니 나비가 참새를 잡는다고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나비의 참새 사냥도 자신의 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게 그날 할아버지 말씀의 결론이었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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