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반찬 갖고 다툰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나비와빠루] 제43부 동물을 친구로 만든 인간의 위대함

 

[노트펫] 중년을 넘어 이미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부모보다 훌쩍 더 커버린 자식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나이 든 필자의 차지가 된지 오래다.

 

어린 주인에서 늙은 주인으로 놀이 대상으로 바뀐 장난감은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람과 함께 보내고 있다. 어른이 되어도 장난감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계속 지내는 키덜트(kidult)라고 할 수 있다.

 

십여 년 전 아이들과 홍콩에서 구입했던 미니언즈들. 오랜 시간 필자의 책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장난감들을 보면 개성 강했던 친구들을 보는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된다. 당시는 학교 급식을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다. 매일 아침 전국 학부모들은 자신의 새벽잠을 줄이며 자녀들의 도시락을 챙겨야 했다. 그날 점심시간 반찬통을 열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꿈꾸던 장조림이 보였기 때문이다. 적당한 염도, 코끝을 스치는 풍미, 어머니표 장조림의 특징이다.

 

그때 옆 자리에 앉은 짝의 젓가락이 눈앞에 보였다. 그 젓가락은 도시락 주인의 양해도 없이 장조림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냥 싫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친구에게 예의를 지키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았다. 순간 짝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지금도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 오후 내내 친구와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은 자신의 얼굴에 그날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적어둔다. 하교 후 마당의 평상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 옆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았다. 할아버지는 신기하게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한 번 보더니 밑도 끝도 없는 동물 이야기를 했다. 주제는 인간의 위대함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직접적인 문제 해결 답안을 제시하는 대신 보통 이런 식의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 손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공자(公子), 맹자(孟子)에 버금갈만한 성현인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사람들의 조상은 도시가 아닌 자연에 살았다. 그런데 지혜가 생기자 자연에서 나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만 살다보니 다른 친구들이 없어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평소 사냥도 같이 하고 집도 지켜줄 동무를 만들었다. 그게 나중에 개가 된 늑대의 친척이었다.

 

개와 생활하다보니 생활이 나아졌다. 그 결과 식구도 늘어나게 되었다. 사냥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사람은 자연에서 힘도 세고, 일도 잘 하는 동물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게 소다. 듬직한 친구 소 덕분에 창고에 먹을 것이 쌓이게 되었다.

 

먹을 게 많이 생기자 자연계에서 가장 도둑질을 잘 하는 동물인 쥐가 사람의 왕국에 몰래 들어왔다. 하지만 영리한 사람은 그 문제를 자신의 힘이 새로운 친구를 통해 해결하였다. 호랑이의 작은 친척인 고양이가 쥐를 소통하기 시작했다. 우리 조상들이 개, 소, 고양이를 친구로 만든 덕분에 지금 우리는 굶지 않고 잘 사는 것이다.

 

사람은 동물들을 친구로 만들어 세상 풍파를 해쳐나갔다는 게 말씀의 주제였다. 손자에게 친구와 화해하고 잘 지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권유한 것이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손자의 반찬통에 반찬을 듬뿍 담으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려운 시절, 손자의 눈에 눈물을 핑 돌게 만든 할아버지의 배려였다.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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