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더미에 쓰러진 할머니 목숨 구한 전직 119구조견
2022.07.04 15:29:08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노트펫] 임무 도중 당한 불의의 사고로 조기은퇴한 119구조견이 탈진해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구조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7시20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화성경기종합타운 주변. 올해 9살 난 셰퍼드 반려견 세빈이와 함께 매일 주변 인도를 따라 산책하는 현주 씨는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산책하던 도중 세빈이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했다. 가장자리로 걷다가 언덕배기로 내려가더니 풀더미 앞에 멈춰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리 나와" "뭐해?"라고 불러도 그대로였다.
세빈이가 꼬리를 흔들고 짖기까지 하자 뭔가 싶어 따라내려가 자세히 본 현주 씨. 풀더미 안에서 C자 모양으로 웅크리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게 됐다. 위에서 얼핏 봤을 때는 버려진 큰 인형이거나 마네킹인줄 알았는데 실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일부러 내려와서 앉아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인도 가장자리 울타리 밖으로 구른 것으로 보였다. 개는 물론 사람이 다가와도 그대로인 할머니. '괜찮으세요'하고 물어봐도 할머니는 움직임이 없었다. 마른 날이었음에도 하의는 젖은 채였다.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든 현주 씨는 그길로 바로 112에 신고하고 구조를 요청했다. 경찰이 출동한 뒤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경찰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라고 수 차례 부르고 몸을 흔든 뒤에서야 할머니는 의식을 되찾았다. 다행히 할머니는 정신이 들면서 경찰이 부축해서 언덕배기를 올라왔고, 현주 씨는 나중에 경찰로부터 할머니의 보호자가 확인돼 귀가조치됐다는 말을 들었다.
현주 씨는 "출동한 경찰도 처음에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며 "할머니의 몸상태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한여름에 풀더미 안에 계속 방치됐다면 건강이 상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러면서 세빈이가 119구조견으로서의 수색탐지능력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 것같다고 했다. 2020년 3월 현주 씨의 가족이 된 세빈이는 '그일'이 있기 전까지 전국의 재난 현장을 누비던 119구조견이었다. 핸들러 아빠와 호흡을 맞춰 전국의 산과 강을 누비고, 부서진 건물 잔해 속 혹시 살아 있을 지 모르는 사람을 찾고 또 찾았다.
2019년 8월 충북 청주 무심천 주변에서 실종된 지적장애 청소년 수색 임무에 투입돼 수색을 벌이다가 독사에 물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세빈이는 신장 기능의 80%를 상실했고, 더 이상의 임무수행은 어렵다는 판정이 내려지면서 2020년 3월 7살의 나이로 조기은퇴했다.
세빈이는 이후 평범한 반려견으로 살아가는 한편 지난해부터는 소방청 대변인실 소속 명예기자로서 119구조견들을 일반 국민에 알리는 역할에 현역 시절 못다한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현주 씨는 "사람을 구하려다 다친 인명구조견이 은퇴한 뒤에도 사람에게 도움을 주게 돼 기쁘다"며 "사람을 돕고, 또 임무를 마친 뒤 평생가족을 찾는 강아지들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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