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과 ‘반려’, 호칭 보다 마음이 우선
애완동물의 애완은 사랑 애(愛)와 희롱할 완(玩)이 합쳐진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랑하고 희롱하는 대상이 애완동물인 셈이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얘기할 때, 희롱을 떠올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사람은 사랑을 생각하고 불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애완동물 보다는 반려동물로 호칭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도 아니고, 적잖은 시간도 흘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몇 년 새 매스컴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다만 ‘애완’이란 말이 오랫동안 입에 붙은 탓인지 ‘반려’와 함께 섞여 쓰이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반려’와 ‘애완’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언어의 잣대로 쓰일 정도다.
애완동물이란 호칭도 나쁘지 않은데, 왜 반려동물인가. 동물들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가지 혜택과 고마움을 생각해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부르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신세를 져온 만큼 호칭의 격상을 통해 이들을 위로해주자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반려’는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를 의미한다. 누군가 이 말을 제안한지도 30여 년이 흘렀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였던 콘라트 로렌츠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첫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꽤 오래전이다.
언어학자들은 ‘말의 변화는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바꾼다’고 말한다. 애완동물이든 반려동물이든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말인 만큼, 오히려 부르는 사람의 마음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과 관심만 있다면 ‘애완’이든 ‘반려’든 크게 상관할 일도 아니다.
장자도 “왕의 권세를 가졌다고 반드시 귀한 것이 아니고, 서민의 어려운 삶이라고 해서 반드시 천한 것도 아니다”며 “귀천은 그 사람의 행동에 아름다운 마음이 있는지, 사악한 마음이 있는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마음가짐이 우선이란 얘기다.
그러나 현실에선 ‘애완’과 ‘반려’를 외치면서 뒤로는 실리와 숫자놀음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적잖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사랑은 무조건이어야 한다. 조건은 곤란하다. 가수 박상철이 부른 ‘무조건 사랑’이 노래방에서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필자도 ‘애완’ 보다 ‘반려’에 동의한다. 덧붙여 ‘호칭 보다 마음이 우선’이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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