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말티즈 할매의 비행기 여행
2015.11.24 14:53:14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앗, 안돼! 다롱, 이리와!"
제주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자리 뒷편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서 뒤를 돌아다 보니 다롱이가 좌석 통로에서 어슬렁대고 있었다. 황급히 벨트를 풀고 팔을 뻗어 다롱이를 걷어 올렸다. 휴, 그렇게 개를 동반한 비행기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말티즈 다롱이의 나이는 올해 14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데려 가기로 결심했다. 맡겨본 이들은 알겠지만 강아지 호텔에서는 7살이 넘어 가면 사고 가능성을 이유로 잘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
14년 전 이미 다롱이의 어미 은빈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있다. 그 때 개인적 기억은 썩 유쾌하지 않다. 당시에도 비행기마다 기내에 2마리씩은 태울 수 있었고 사전예약을 하면 됐다. 지금과 똑같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가는 바람에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뭔가 허술한 종이 케이지에 은빈이를 넣어 타야 했다. 가만히 있질 않는 은빈이가 버둥거림 끝에 그예 종이 케이지를 뚫고 나왔다.
그 당시 케이지를 뚫고 나오려는 은빈이의 머리를 누르고 또 누르고 그렇게 한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갔다. 은빈이도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비즈니스 석을 이용했지만 "털 날리게 왜 개를 데리고 왔느냐"는 여승무원의 눈초리는 지금도 또렷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약할 때부터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안전한 수송을 위해 단골 애견숍 사장님에게 케이지를 빌렸다. 통상 항공사에서는 케이지 무게까지 포함해 추가 요금을 받는다. 통상 허용 무게는 5킬로그램, 곳에 따라 좀 더 여유있게 해주는 항공사도 있는데 무게를 파악해 둬야 한다. 자칫하면 기내에 태울 수 없다고 거절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케이지의 크기다. 기내에서는 케이지에 강아지를 집어 넣고 좌석 밑에 얌전히 놔둔다. 그런데 케이지가 크다면 좌석 밑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 역시 대략 난감이다. 가져온 케이지를 버리고 종이 케이지를 사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가는날 공항에서 탑승 절차를 시작했다. 먼저 발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케이지에 다롱이를 넣어 무게를 잰 뒤 무게에 맞춰 추가 요금을 내는 것으로 끝.
검색대도 크게 신경쓸 만한 것은 없었다. 국내선은 검역 절차가 별다른 것이 없다. 게다가 검색대를 통과할 때 공항 직원들은 다롱이를 껴안고 통과할 것을 주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컴컴하고 이상한 광선이 나오는 곳을 통과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공항 내에서는 꼭 안고 다녔다. 호기를 부려 목줄을 매고 다녀볼까도 싶었지만 아직 사람들의 시선은 부담이 갔다.
탑승구에서 케이지에 넣고 드디어 탑승. 좌석 밑에도 딱 들어가니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역시 여기서부터.
다롱이가 가만히 있질 않고 버둥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평소 쓰던 케이지도 아니고, 답답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 때를 대비해 준비해 간 간식을 줬으나 먹을 때만 조용했고, 이내 낑낑대며 버둥거렸다. 옆승객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가는 내내 케이지를 툭툭 치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해서 다시 다롱이를 안고 공항 밖으로 나와 일정을 소화했다. 제주에서는 "너도 비행기 타고 왔니?"하면서 관심을 보여 주는 이들 덕분에 나쁘지 않았다. 개를 데리고 온 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숙박은 개 요금을 추가로 내는 펜션에서 해결. 그렇게 일정이 끝나고 김포로 다시 오는 일이 시작됐다.
오는길은 가는길의 역순. 헉, 일요일 오후 제주공항은 사람으로 미어 터졌다. 목줄에 맨 채 활보했다가는 딱 이산가족되기 십상이었다. 꼭 껴안고 다니는 것만이 정답. 제주 올 때와 같은 탑승 절차가 끝나고 비행기를 탔는데 버둥거림은 역시 반복됐다.
그걸 가엽다고 여겨 케이지의 문을 조금 열어둔 것이 화근이었다. 다롱이는 그틈을 머리로 비벼 대면서 지퍼를 좀 더 열고 결국 탈출했다. 잠시 졸다가 그것을 보지 못했는데 시트 아래 있다가 비행기가 출렁이니 통로까지 나왔고 그것을 다른 승객들이 봤다. 식은 땀이 줄줄 흐르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매서운 눈으로 흘기는 여승무원이 없었고, 승객들도 관대한 마음으로 봐줬다는 점이다. 제주갈 때 옆자리 승객은 탑승 규정을 물어보는 호의를 보여줬다. 14년 전보다는 확실히 반려견에 대해 너그러워진 듯했다.
다롱이는 여행 내내 변을 누지 못했으나 도착 다음날 아침 마침내 변을 누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개를 동반한 비행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사전에 케이지 적응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개를 안심시킬 수 있는 간식도 꼭 가져가길 권한다.
개가 낑낑 댄다고 케이지를 조금이라도 개방하는 것은 금물이다.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낑낑 댄다고 꺼냈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행동도 삼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요금을 냈으므로 꿀릴 것이 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허용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펫티켓을 지켜야 할 곳은 비행기뿐만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동반여행은 주의! 또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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