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타인에게 인정받아도 행복

[나비와 빠루] 제 65부

 

 

[노트펫] 김춘수 시인의 '꽃',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명시(名詩)다. 시의 바탕에는 마치 소리 내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는 인정(認定)이라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노라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보편타당한 명제가 절로 생각난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품종견(品種犬)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래서 스피츠견인 빠루와 산책을 하면 무슨 종류인지, 한 번 만져 봐도 되겠냐고 말을 많은 분들이 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빠루가 스피츠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빠루와 같이 산책을 하고 있는 데 한 중년 남성이 저 멀리서부터 한걸음에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대뜸 “스피츠 맞지?” 하고 물으면서 빠루의 주인인 어린 필자의 대답도 듣지 않고, 덥석 개를 안았다.

 

초면의 어른이 다소 황당한 행동을 하니 어린아이 입장에서 못내 당황스러웠다. 빠루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낑낑거리며 포옹을 풀어줄 것을 자신의 언어로 낯선 사람에게 요구했다. 그제서야 그 분은 정신을 차리고 어린 견주에게도 정중하게 사과했다.

 

다소 흥분을 가라앉힌 그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서 요약하면 스피츠 강아지를 10여 년 전 친척집에서 분양받아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다가 일 년 전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필자의 지인이 키우고 있는 스피츠

 

그 분은 자신이 키웠던 스피츠에 대한 애정이 컸다. 어릴 때는 마치 북극여우처럼 귀여웠고, 커서는 천사처럼 착했다며 뜬금없이 빠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오늘 정말 오랜만에 예쁜 스피츠를 만나 너무 행복하다며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고, 지갑을 꺼내 지폐 한 장을 주었다. 재주는 빠루가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 셈이었다.

 

빠루를 데리고 귀가하면서 그 분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은 어려 잘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면 스피츠와 함께 한 시간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인지 알게 될거다.” 지금도 매일 빠루를 생각하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다.

 

작년 가을 오후,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였다. 하늘은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필자의 바로 뒤에서 중형견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문뜩 정체가 궁금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예쁜 보더 콜리 강아지가 보였다. 성견은 아니고 7~8개월령(齡) 된 것 같았다.

 

견주는 시선이 마주치자 “놀라셨어요?”하고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니요.”라는 틀에 박힌 대답 대신 다른 대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더 콜리네요. 좋은 개죠. 아주 예쁘네요”. 그 말을 듣고 그 분은 자신의 보더 콜리에게 “축하해. 너도 인정받고 있어.”라며 매우 기뻐했다. 반려견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느껴졌다.

 

순간 40여 년 전 만난 어른이 생각났다. 빠루가 스피츠임을 알고 귀엽고 예쁜 강아지라고 말해줘서 하루 종일 기분 좋았던 추억이 강제소환됐다. 그 분이나 필자나 팩트(fact)를 말한 것 뿐 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기분 좋다면 그 얼마나 보람차고 좋은 일인가!

 

*동물인문학 저자 이강원(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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