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팥죽 한 그릇에도..
한 해가 저물어간다. 동짓날이 눈앞이다. 동지는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뒤집어 얘기하면 이날을 기점으로 밤은 다시 짧아지고, 낮은 길어진다. 그래서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작은설'로도 불리웠다. 태양이 다시 기지개를 펴는 날이라고 해서 설 다음 가는 ‘작은설’로 대접받은 것이다.
요즘 동지의 의미는 많이 퇴색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래 전 중국의 주나라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동짓날을 새해의 첫날로 삼은 기록이 있을 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날로 여긴 때문이다.
우리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에는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고, 정을 나누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유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이웃을 챙기며 팥죽을 함께 먹곤 했다. 요즘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부모 세대는 팥죽을 먹기 전 장독대나 뒷마당 등 집안 곳곳에 팥죽을 먼저 뿌리는 ‘고수레’를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수레’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그저 미신을 믿는 행위로만 여겨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영조 푸른솔겨례문화소장은 그의 저서 ‘맛깔스런 우리문화 속풀이 31가지’에서 팥죽 ‘고수레’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겨레는 팥죽 풍습을 통해 한 해의 건강을 기원했다. 동지의 오랜 풍습으로 대문, 장독대 등에 팥죽을 뿌리는 ‘고수레’는 단순히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겨울철 먹을 것이 모자라는 동물들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팥죽을 혼자 먹으면 몸의 건강만 챙기지만,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면 정신의 건강도 함께 얻을 수 있음을 우리 겨레는 알고 있었다”며 “우리는 행복한 세시풍속을 실천한 민족”이라고 강조한다.
팥죽을 한 그릇 먹더라도 동물과의 상생을 생각했었다는 김 소장의 풀이는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말 못하는 짐승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공존의 철학이 삶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고수레’인 셈이다.
‘까치밥’도 배려와 나눔의 측면에선 같은 맥락일 것이다.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날짐승을 위해, 그들도 굶지 말라고 몇 알의 감을 나무에 남겨둔 게 ‘까치밥’이다. 올해는 감농사가 풍년이어서 ‘까치밥’도 풍성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매해 연말이면 불우이웃을 돕자는 행사가 봇물을 이룬다. 이 역시 동짓날 팥죽 ‘고수레’와 ‘까치밥’ 문화의 전통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동물학대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끊이지를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다. 이에 대해 누구는 정서적 빈곤의 문제라고 말한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동물을 공존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선조들의 생활 철학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사건‧사고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새해에는 변화된 환경을 기대해 본다. 올 동짓날 팥죽을 한 그릇하면서 마음속으로나마 ‘고수레’를 외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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