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떤가요?”-한국리서치 기획조사(1)
2026.05.31 09:30:50 이훈 에디터 기자 hoon@inbnet.co.kr[노트펫] 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국내 2,002명의 보호자들에게 물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떤가요?”
한국리서치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 연구실이 지난해 3월 12일 ~ 17일 공동으로 수행한 '2025 반려동물 양육 가구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리서치 자체 조사 사이트'여론 속의 여론'은 [반려동물 양육가구 실태조사 – 반려동물 노화와 질병, 죽음까지를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0년령 이상의 반려동물과 사는 가구는 38.3%로, 반려동물 노령화 사회가 본격화되고 있다. 13세 이상 반려동물 가구의 지난 1년간 동물병원 방문 횟수는 평균 5.4회로 가장 높고, 월평균 양육비 중 건강관리(병원비) 지출 비율 역시 월평균 양육비 중 30.1%로 가장 높다. 다가올 노령성 질병·임종·장례에 대한 준비 정도를 보면, 간병(56.3%)과 금전적 부담(53.1%) 등 실질적 대비에 비해 질병과 죽음에 대한 정서적 준비(46.9%)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반려동물 죽음을 경험한 응답자 5명 중 1명(21.3%)은 상실의 슬픔이나 애도 과정에서 주위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했다고 답해, 반려동물의 죽음이 여전히 “소외된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의 형태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반려동물 죽음을 경험한 응답자의 85.0%는 죽음 이후 감정이나 정신적 변화를 겪었다고 답했으며, 건강이나 질병·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79.1%), 남겨진 동물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68.7%) 등 광범위한 인식 변화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반려동물 죽음을 경험한 응답자 중 47.4%가 비용을 지불하고 장례 서비스(화장, 봉안당 등)를 이용한 경험이 있었으며, 전체 응답자 기준 70.2%가 현재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 사후 장례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10년령 이상 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 가구 38.3%
일반적으로 개와 고양이의 수명을 15년 정도로 본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에서 노령은 언제부터일까? 미국동물병원협회는 반려견의 경우 기대 수명의 75%가 지난 이후를 노령견으로 본다. 개의 품종이나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다. 미국고양이수의사협회는 10살 이후 고양이를 노령으로 간주한다. 최근 충북대 수의대 민경덕 교수팀은 국내 동물병원 진료기록 50만여건을 분석하여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은 11살, 반려묘는 13살부터 노령으로 볼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노령 동물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통상 10살 이후를 노령으로 볼 수 있겠다.
국내 반려동물등록 시스템 에 등록된 반려견 중 9년령 이상은 2021년 40%를 넘었다. 반려동물 노령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본 설문에서도 응답자 중 절반 이상(52.4%)은 8년령 이상의 동물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이 중 10년령 이상의 동물과 사는 가구는 38.3%에 달한다.
늙고 아프기 시작하는 동물을 위한 일상의 변화, 그리고 어려운 결정들
나이든 동물과 살면서 동물의 달라지는 신체와 활동 범위에 맞게 일상을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령 동물을 위한 맞춤 사료나 씹기 편한 습식 사료로 식단을 바꾼다. 관절 건강을 위해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고, 침대맡에는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스텝퍼를 놓는다. 잦아지는 기침을 완화하고 호흡을 돕기 위해 방 한켠에 가습기와 온습도계, 응급용 산소공급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산책을 힘들어 하는 동물을 위해 산책량을 조금씩 줄이고, 관절과 근육 건강을 위한 마사지와 보조제로 일상을 채운다. 이러한 변화는 동물을 위한 소비 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 들고 아픈 동물이 있는 가정에서는 약 먹이기나 소독, 인슐린 주사 같은 조금 더 어려운 돌봄이 추가된다. 잔뜩 예민해져 물고 할퀴고 도망다니는 동물을 어르고 달래며 수행해야 하는 의료적인 처지 과정은 보호자의 돌봄 부담을 높일 수 있다. 반려동물 의료 분야에서는 노령 동물의 신부전, 당뇨, 암과 같은 만성퇴행성질환에 대한 관리와 치료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본 설문 결과에서도 동물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병원에 방문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건강관리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이 높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노화나 질환이 진행되면서 보호자들은 치료나 죽음의 방식과 관련된 중대한 의사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죽음관은 자연스러운 죽음(natural death)을 “좋은 죽음”으로 인식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거나 혹은 중단하는 것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다. 하지만 반려동물 수명 연장을 위한 첨단 의료 기술이나 호스피스 및 완화 의료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반면, ‘안락사(euthanasia)’는 상태의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감되지 않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유무보다는 삶의 종결에 더 큰 의미를 두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국내 반려동물 안락사 시행률은 영국이나 덴마크 등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죽음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은 반려동물과 살며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혼란의 경험은 동물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 후회, 미안함 등으로 잔류하기도 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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