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피로회복제, 감기약, 디저트는 종이상자
며칠 전 저녁 아직 어리고 특별히 아픈 구석은 없어 보이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데리고 한 젊은 커플이 병원에 왔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초콜릿을 먹었다는 것이다.
어떤 초콜릿을 얼마나 먹었는지 물었더니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의 화이트 초콜릿 3개를 먹었다는 것이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20kg이 살짝 넘는 체중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화이트 초콜릿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 중독용량은 아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호자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보호자는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라며 피로회복제, 종합감기약, 한약 그리고 종이 상자까지 뜯어 먹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람에겐 건강 선물세트이지만 동물에겐 중독종합세트가 된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종합감기약이었다. 대부분의 종합 감기약에는 타이레놀(Tylenol)이라는 상품명으로 더 유명한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라는 해열진통제가 들어간다. 개와 고양이는 이 성분을 분해하는 능력이 없어서 섭취하게 되면 간세포와 적혈구를 손상시킨다.
체중 3kg의 개가 타이레놀 한 알을 섭취 했다고 하면 중독용량에 해당되며 섭취 1-2시간 이내에 호흡곤란, 혈변, 혈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을 섭취한지 12시간 이내라면 해독제를 사용해 볼 수 있으나 심한 중독의 경우 예후가 좋지 못하며 고양이는 특히 더 작은 용량에도 중독 증상이 나타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성분을 알 수 없는 피로회복제나 한약도 개와 고양이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단순히 비타민C 등이 들어간 경우도 있지만 카페인이 함유된 것도 있고 한약 역시 다양한 약초가 다량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중에 동물에게 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이 있을 수 있다.
반려동물의 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무엇을 얼마나 언제 먹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콜릿의 경우 상품명이나 포장지, 약물의 경우 역시 포장지를 가져오거나 처방약의 경우 약 봉투에 있는 처방목록을 가지고 오면 치료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감기에 걸린 여자친구를 위해 선물한 약과 건강보조식품, 초콜릿 등이 든 상자를 반려견이 뜯어 먹으면서 생긴 이번 사건은 다행히 치료를 받고 건강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아름다운 커플에게는 달콤씁쓸한 추억 하나를 남겼다.
칼럼을 진행하는 김진희 수의사는 2007년부터 임상수의사로서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어린 반려동물 진료 분야의 베테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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