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삐삐, 평화 그리고 먼지 이야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들은 모두 전북 정읍시에 있는 어느 한우농장에서 살고 있거나 살았던 개들이다. 이 농장은 수의과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신 교수님이 귀농하여 세운 것이다.
교수님은 평생 소전염병의 예방사업을 위해 헌신한 분으로 우리 소 한우를 너무 좋아하여 몇 년 전부터 “은퇴해서는 한우농장을 만들 것이다.”고 주위에 공언하셨다.
결국 교수님은 이 농장을 만들면서 평소 주변 분들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셨다.
그런데 교수님의 한우농장은 소도 많고 규모도 커서 이를 지킬 개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교수님은 개 4마리를 경비견으로 키웠다.
먼저 이 농장 개들의 알파독, 즉 우두머리는 2009년생인 평화라는 진돗개다. 평화는 교수님이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이 농장의 경비를 위해 특별히 주신 용맹한 진돗개다. 아주 총명하고 영리하여 도둑놈은 농장에 근접하기 어렵게 만들어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평화의 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암컷은 2007년생인 삐삐라는 잡종견이다. 동네에서 버림받은 유기견을 교수님의 농장에서 거둬 키운 개다. 원래 평화의 짝으로 다른 진돗개 암컷을 염두에 뒀지만 평화는 삐삐를 자신의 와이프로 삼고 그 사이에 무명이라는 새끼도 낳고 말았다.
무명이는 아빠와는 달리 겁이 많다.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여 필자가 자기 곁으로 가면 도망치기 바빴다.
이 세 마리 개는 가족이지만 그 외에 다른 개도 있다. 먼지라는 2011년 봄에 태어난 골든 리트리버 수컷이다. 이 개는 개를 좋아하는 교수님의 외동아들이 펫숍에서 구입한 개로 유순하기로 소문나 있다. 먼지는 진돗개 평화의 강력한 포스에 복종하며 말 그대로 평화롭게 살고 있다.
2012년 봄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정읍의 한우농장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덩치 큰 골든 리트리버가 다가오고, 진돗개가 꼬리를 치고 오니까 겁을 먹었었다. 하지만 아빠가 그 녀석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개들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내고 즐겁게 개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
농장의 우두머리인 평화는 도둑으로부터 농장을 지키는 경비견 역할도 하지만 소들의 먹이를 축내는 산새들도 수시로 사냥해서 잡아먹곤 했다.
내가 농장을 방문했을 때도 평화는 능숙한 솜씨로 먹이를 쪼고 있던 이름 모를 산새 한 마리를 급습하여 잡아먹었다. 우리 가족들은 날짐승도 순식간에 해치우는 진돗개의 뛰어난 사냥솜씨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한우농장의 평화로운 날들은 이어졌다. 그러다가 2012년 11월15일 평화가 다른 농장에서 쳐놓은 쥐약을 먹고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교수님에게 안부전화를 드리다가 평화의 급사 소식을 들은 나는 어린 시절 키웠던 고양이 나비의 슬픈 죽음을 떠올렸다. 나비 역시 쥐약을 먹고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다.
건강하던 평화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한우농장의 주인이며 평화의 주인인 교수님은 “시골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어요.”라며 평화를 잃은 아쉬움과 슬픔을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비록 우리 집 애견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개가 평화였다. 아이들은 평화에 매력에 빠져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진돗개 백구를 키우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글을 작성하기 며칠 전 교수님과 통화를 할 일이 생겼다. 먼저 교수님과 가족들의 안부를 여쭤보고 나서 개들의 안부를 여쭤봤다. 그런데 한 없이 착하기만 하였던 먼지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대답을 듣고 말았다. “착한 녀석이었는데, 평화를 따라 하늘나라로 갔네요.”
이제 정읍의 한우농장에는 두 마리의 개가 남아있다. 평화의 아내 삐삐와 평화와 삐삐 사이에 태어난 무명. 이제 그 농장의 순찰대장은 평화의 피를 물려받은 무명이가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무명이가 자기 아버지처럼 막중한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하지만 용맹하고 빈틈없는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삐삐니까 잘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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