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는 건 연애와 비슷하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 연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막상 사귀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어서, 혹은 처음 내가 알던 모습이 변했다고 생각해서 많은 연애는 실패한다.
전문가들은 그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걸 내가 바꾸려 하지 말라고, 혹은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지 말라고 조언한다.
나 역시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내린 결론은 그랬다. 그가 가지고 있는 나와 맞지 않는 면을 수긍하거나, 아니면 정말 내가 못 견디겠다고 생각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부분을 포기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와의 관계를 그만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데, 그건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심지어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주는 척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고양이로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주인을 몰라본다, 불러도 오지 않는다, 털이 너무 많이 빠진다, 싱크대에 올라간다, 시끄럽게 운다는 등의 이유로 결국 고양이를 성가셔하게 된다.
고양이가 주는 생활 속 수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면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즉,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다른 종족의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나보다 아래에 있는 하급 존재(왜 주인 말을 안 들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개별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고양이와의 동거에서 평화는 찾아온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기만을 원하는 관계는 오래 갈 수 없다.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그는 태생적으로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그라는 사람은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처음 들어온 건 4개월 정도 된 아기 고양이가 내 친구의 손에 ‘냥줍’ 당해왔을 때였다. 어른 고양이들에게 쫓기고 있었다는 그 아기 고양이를 도와줬더니 친구를 졸졸 따라왔다는데, 어쩐지 눌러 살게 된 곳은 우리 집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3개월 정도 미리 계약하여 혼자 살고 있었다. 풀옵션 원룸에서 자취하다가 이사 온 것이라 모든 걸 새로 사야 했고, 나름 인테리어하는 재미로 인터넷 쇼핑에 빠져 매일 택배가 오던 시기였다.
나름대로 야심차게 구입한 패브릭 소파를 중심으로 하나둘 집안의 구색이 갖춰져 갔다. 우리 집에서 살게 된 아기 고양이 제이가 예쁘긴 해도 나도 사람인지라 내 새 가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보살핌의 욕구가 생겨나던 차였다.
평소 집안에 먼지가 쌓이든 침대가 옷걸이가 되든 무신경한 편이었는데(청소를 하느니 더러운 방에서 자는 게 낫지) 새 가구에 고양이 스크래치가 날 것이 내심 염려됐다.
틀림없이 만만한 타겟이 될 것 같은 패브릭 소파를 어떻게 지킬까 고민하다가, 재빨리 소파 덮개를 주문했다. 회색 패브릭 소파의 색깔과 맞춘 회색 스프라이프 무늬였다.
애타게 기다린 덮개가 드디어 도착했고, 이제야 소파 위에 안전하게 덮어둔 뒤 맘 놓고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자 처음 우리 집에 온 순간부터 야무지게 모래를 찾아가 화장실에 볼일을 보던 똑똑한 이 새끼고양이는, 그 사이에 덮개 위에 오줌을 싸 놓았다.
그나마, 덮개를 덮어놓아서 다행이었다. 그날 바로 빨고 말려서 다음 날 다시 소파 위에 올려놓자, 5분도 안 되어 제이가 그 위에서 뒷다리로 수상한 제스처를 취했다.
뭐 하니, 너? 다가갔더니 이번에도 그 위에 오줌을! 나는 이걸 세 번째까지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덮개가 소파를 지켜준 게 아니라 이 고양이는 이 덮개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걸 치우자 그 후로 제이가 소파에 오줌을 싸는 일은 없었다. 말로 해, 이 녀석아….
내가 고양이 사료만큼 급하게 산 게 스크래처인데, 그게 있어도 소파를 고양이의 발톱에서 지켜낼 수는 없었다. 소파를 긁으면 입으로 ‘쓰읍!’ 소리도 내 보고,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레몬즙을 물에 섞어 스프레이로 뿌려보기도 했다. 소파에 양면테이프를 붙여놔도 그때뿐이었다.
이 고양이는 소파를 몇 번 긁으며 내 눈치를 보다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 조치를 취하려고 다가오면 재빨리 도망갔다. 심지어 내가 소파를 아낀다는 걸 눈치챘는지, 밥 달라고 몇 번 말했는데 내가 뭐가 바빠서 못 들은 척하면 소파를 긁었다. 나는 포기했다.
예비 신랑이었던 당시 남자친구는 아직 입주하기도 전이라, 자기가 써 보지도 못한 가구를 고양이가 먼저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에 처음 몇 번은 매우 속상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이 소파를 대형 스크래치라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가구보다 고양이의 행복이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도통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 고양이에게 우리 둘 다 그냥 두 손 다 들어버린 것이었다.
소파는 어차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보풀투성이가 되었다. 고양이라서 발톱을 갈아야겠다는데 어쩌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관계의 평화는 온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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